방학 초기에는 학기 중의 여운이 남아있어서 시간 감각이 꼬인다. 가령 9시 50분이 되면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 학교였다면 1교시가 끝나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교실에서는 자칫하면 화장실을 못 간다. 수업이 칼처럼 종료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고자질 들어주랴, 사물함 받침대가 빠졌다는 민원 처리하랴 이러다 보면 십 분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요의가 있다 싶으면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쉬는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볼 일을 보러 가는 게 좋다. 상황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집에 머무르면서도 9시 50분과 10시 40분에 맞춰 화장실을 이용했다. 어떤 미션에 성공한 것처럼 뿌듯했다. 이번에는 화장실을 놓치지 않았다고! 나는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느꼈다. 방학을 했으므로 나는 서두를 것도, 작전 수행하듯 소변을 볼 필요도 없었으나 몸에 밴 시간 감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듯했다. 하긴, 몇 달간 쌓인 긴장과 방향성이 이틀 만에 허물어지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인간은 환경이 변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뇌 입장에서는 하던 대로 하는 게 편하니 기존의 시스템을 포맷하고 새 프로그램을 깔기 싫을 것이다. 하지만 방학은 느슨한 생활양식으로 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복잡할 것 없이 규칙성을 제거하고 운명에 내 몸을 자연스럽게 맡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단순한 나의 의지와 달리 몸은 그 나름의 절차와 규칙이 있는지 적응하는데 다소 노력이 필요한 듯하다.
나는 오늘 아내와 손을 잡고 오후 두 시에 서호 책방에 갔다. 평일 오후 두 시에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뭐 하고 사는지 궁금해서 걸어갔다. 주말과 별 다를 바 없이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춘장을 볶고, 꽃을 팔았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의 시간 감각과 체력에 맞게 열심히 살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낮에도 밖에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놀란 마음을 새삼 음미하며 책을 읽었다. 두 시 십 분에 별안간 오줌이 마려워서 잠시 책방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