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낀 낚시 바늘과 쉰 목소리
21.08.24
때로는 일이 모두 끝난 후에야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흥청망청 여름휴가는 자릿수가 줄어든 계좌 잔고에서, 느긋한 목욕은 쪼글쪼글한 손가락이 그간의 일들을 말해준다. 오늘은 개학이라 4교시 밖에 하지 않았다. 당장 다음 주부터 내리 6교시를 달려야 하는 일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는 학교에 완전히 적응되어 있지 않았다.
목이 간 것이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따갑고 성대에서는 갈라진 소리가 나온다. 32일 간 방학 생활에 익숙해진 나머지 무리하고 말았다. 말하기에도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학교는 출근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이 하교하는 순간까지 굉장히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사소한 생활지도, 시간 안내, 수업, 농담... 교육에서 말과 글은 뼈와 살이다.
더군다나 나는 스물 두 명을 상대해야 하므로 말의 빈도가 많을 뿐 아니라, 음량도 덩달아 커진다. 용수철을 일정 세기 이상으로 잡아당기면 탄성력을 잃어버리듯이 목소리도 적절한 휴식과 균형감을 놓치면 망가진다. 나는 점심을 먹고 나서야 내가 상당히 목을 혹사시켰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에서의 말하기는 100미터 질주는 아닐지라도, 10000m 장거리 달리기에 가깝다. 기본 속도가 떨어지거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쩌면 교육대학 교육과정에 튼튼하게 말하기 강좌를 개설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신규 교사 시절 걸핏하면 목이 쉬어서 모과차를 달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수혁이가 강에서 놀다가 낚시 바늘이 손가락에 낀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는 어쩌다가 그랬냐고 묻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니면 우빈이네 강아지가 귀신을 보고 허공에 짖고 센서등이 켜졌다는 이야기나, 예주네 어머니가 계속 10점 차이로 운전면허증 시험에 떨어지는 사연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멀쩡한 선생님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니 강인한 목을 가지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목으로 아령이라도 들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