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학교의 맛

웃는 얼굴 대신 희망찬 고통으로

21.08.25

by 이준수

오후의 텅 빈 교실에 앉아 아이들이 방학 중 쓴 일기와 독서록을 읽는다. 참 열심히도 썼다. 나는 직업 교사인 주제에 다이어리나 노트 필기를 잘 못한다. 잘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할 수 없다에 가깝다. 뾰족한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교과서나 문제집 같은, 그러니까 주요 내용이 소개되어 있는 페이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 별도의 공간에 내용을 정리하거나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반 단행본 도서도 마찬가지다. 필사 노트 같은 건 언감생심이다. 연필을 쥐고 밑줄을 긋거나 여백에 뭘 끄적거릴 뿐이다. 그래서 항상 나의 책은 온갖 낙서와 - 나는 필기라고 주장하지만 - 사선, 물음표로 지저분하다. 복습이 필요하면 거기 위에다 또 다른 표시를 하며 글을 읽을 뿐 기타 부속 공책을 두지 않는다. 기묘한 읽기 습관이다.


이런 형편이니 일기나 독서록 숙제 내는 것이 무척 미안하다. 정작 선생 본인도 할 수 없는 과제를 학생에게 내는 셈이다. 하지만 아이들 글은 무척 흥미로워서 읽기가 전혀 지겹지 않다. 흥미의 원인은 말과 글의 차이에서 나온다. 똑같은 아이라도 말하는 아이와 글 쓰는 아이가 다르다.


아무래도 글을 쓰다 보면 생각도 다듬어야 하고, 표현도 고심해야 하니 차분한 모습이 돋보인다. 멋진 문장도 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무엇이든 또렷하고 진하게, 꼼꼼하고 분명하게 하라고 하지만 나는 부드럽고 연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다.' 같은 해인이의 문장을 만나면 까닭 모를 한숨이 기분 좋게 퐁퐁 나온다. 복권을 긁었는데 2등에 당첨된 기분이 든다.


받은 게 있으면 돌려주는 것이 인지상정, 나는 손으로 쓴 글에는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주는 편이다. 육필이 얼마나 고된지 잘 알기 때문이다. 손가락만 톡톡 두드리면 되는 자판 쓰기에 비할 수 없는 노동이다. 아이들이 워드 프로세서로 글을 써와도 괜찮지만, 99%의 초등학생은 필기구로 숙제를 한다.


나는 짧은 코멘트를 달아주는 중에도 몇 번이나 손을 폈다가 오므리며 마사지를 했다. 지민이는 어떻게 촘촘한 줄공책이 여러 쪽이 넘어가도록 연필을 눌러썼을까. 손 근육을 적어도 열 번 넘게 풀어줘야 했을 것이다. 기역, 니은 글자만 보고 있어도 연필 쥔 아이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참으로 대견하고, 대단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코멘트를 달아주다가 시간이 부족해서 일기장을 가방에 넣었다. 우리 애들 밥 먹이고 씻기고 밤에 해야 할 나의 숙제다. 그런데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키고 나면 만사가 귀찮다. 솔직히 학교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진다. 하지만 다인이도 일기 쓰기 싫어 죽겠는데 꾹 참고 했겠지. 게임 참고, 유튜브 참으면서. 그러니까 나도 참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학상장이란 말인가. 아이들이 쓰러진 교사를 일으키고, 교사는 코멘트를 달며 과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후욱, 냉수를 벌컥 들이마시고 다시 펜을 잡는다. 언제나 사자성어 책 같은 걸 보면 교학상장 란에 제자와 스승이 나란히 웃는 삽화가 들어있었는데 잘못된 것 같다. 진정한 교학상장은 서로의 고통을 공유하며 고통의 동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환하게 미소 짓는 표정 대신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러나 한 줄기 희망을 놓지 않은 그림으로 바꾸어야 한다.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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