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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Oct 07. 2021

금지 반대?! 지킴새의 규칙

월간 그림책(2021년 10월호) <두 마리 당장 빠져!> 신디 더비

ⓒ천개의바람


나는 어릴 적에 선생님이 없는 학교에 다니고 싶었다. 진짜 사람 선생님이 없는 대신 찰흙으로 선생님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 선생님은 친절하고, 나를 칭찬 해주며, 내가 배우기 원하는 것만 수업한다. 이 멋진 계획은 안타깝게도 실현되지 않았지만. 세상에 선생님 없는 학교가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여전히 생각한다. 그런데 내 어린 시절 꿈 같은 그림책을 만났다.


텅 빈 들판에 도토리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새들은 너도나도 이 나무에 올라가고 싶어 한다. 두 날개로 훌쩍 날아가면 될 것 같지만 그럴 수 없다. 엄격한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높다란 의자에서 제복을 차려입은 ‘지킴새’가 감시하는 가운데 새들은 차례로 표를 구매한다.


첫 번째로 입장한 새는 핑크색 바지를 입었다. 새는 기뻐 달려간다. 그러나 경쾌한 발걸음도 잠시, 저 멀리서 지켜보던 지킴새가 엄숙하게 경고한다. “뛰기 금지” 핑크 바지는 의기소침해져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무를 오른다. 룰루랄라 노래 부르며 입장하던 두 번째 새도 “소리 지르기 금지!”라는 지시에 입꼬리가 축 처진다. 지킴새는 고집불통 선생님 같다.


“둥지 만들기 금지! 휴식 금지! 머리 다듬기 금지! 눈 깜빡이기 금지!”


금지 타령은 지겹도록 이어지다가 정확히 백 번째에서 끝난다. 나무는 최대 100마리까지만 수용. 이것이 나무의 대원칙이다. 아무리 오래 기다렸어도 추가 입장은 불가하다. 그러나 지킴새가 도토리 점심을 먹는 사이, 상황이 변한다. 엄마 새가 품고 있던 알에 빠지직 금이 가더니 예쁜 아기 새 두 마리가 태어난 것이다. 전광판은 바로 102 마리를 표시하고 경고음이 울린다. 예상했겠지만 우리의 빡빡한 지킴새는 ‘아이 예뻐라’ 같은 따스한 축하를 건네지 않는다. 집채만 한 그물막대로 위협하기 바쁘다. 두 마리는 빠져! 외치면서.


과연 새들은 순순히 새 생명을 내어놓을까. 지킴새는 결국 쫓겨난다. 잔소리꾼이 물러난 나무는 하하호호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질서가 무너진 곳에는 새로운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몰려든 새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나무는 점점 더 살기 힘든 곳이 되어 버린다. 마침내 지킴새가 복귀하는데, 들판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지킴새의 대머리조차 귀여워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 말을 들으면 지킴새가 기겁하며 외치겠지? 귀여워하기 금지! 책 스포일러 절대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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