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학교의 맛

스쿨존의 자전거

21.09.03

by 이준수

전방 200미터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나는 요즘 이 멘트에 살이 떨린다. 특히 아침 시간이라면 말이다.


7번 국도에서 학교 방면으로 꺾어 들어오면 스쿨존이 시작된다.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고, 통행량은 길의 너비에 비해 월등히 많다. 출근하는 교직원 차량, 자녀 등교 차량, 동네 주민 차량이 쉴 새 없이 바퀴를 굴린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시속 30킬로미터까지 운행해도 되지만 나는 시속 25킬로미터에도 좀처럼 이르지 못한다. 이 구역은 위험하다. 등하교 시간은 특별히 더 위험하다.


과거에 구역정비를 한 탓인지 문구점 입구가 도로와 맞닿아 있다. 문을 열면 바로 노란선이 그어져 있다. 횡단보도가 몇 걸음 뒤에 펼쳐지지만 자동차가 정해진 길만 가지 않듯, 사람도 횡단보도로만 건너지는 않는다. 과속방지턱이 여러 군데 설치되어 있어 속도를 내려야 낼 수도 없지만, 과속방지턱이 없다고 해도 나는 기어갔을 것이다. 아무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고, 나 역시 다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움직여 줄 리가 없고, 일어나야 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오늘도 늘 다니던 길로 천천히 접어들었다. 마을 공동 주차장을 끼고 커브, 첫 번째 골목에서 올라오는 차량을 살피며 직진, 시니어 클럽 환경 정화 활동 여부 확인. 2년째 동일한 패턴이다. 이제 골목이 십자로 교차하는 지점만 통과하면 곧 교문이다. 교차지점엔 가로등이 서있고 의류수거함도 하나 있다. 인근 주민들이 종량제 봉투를 버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만큼 사람도 차도 많다. 그러나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 볼록 거울이 설치되어 있어 사각지대에서 사람이나 차가 오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이번에 볼록 거울에 비친 사람은 자전거에 탄 남자 중학생 한 명뿐이다. 검지 크기로 보이는 걸로 봐서는 적어도 100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이 정도면 상당한 안전거리다. 남학생은 갈색 베이스에 체크무늬 교복을 입었으며, 자전거 종류는 로드바이크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MTB가 대세였는데, 요즘은 아재들이나 타는 자전거 취급을 받는다. 로드바이크는 쌩하고 도로를 질주한다. 날렵하고 경쾌한 주행이다. 아마도 최근의 시대정신이 투박하고 듬직한 MTB 보다는 로드바이크에 더 가까운 모양이다.


나는 교차로에 느긋하게 진입했다. 아무 걱정도 없이. 이 거리라면 자전거는 절대로 진입할 수 없다. 더구나 내려오면서 차를 볼 것이므로 자전거의 속도는 떨어진다. 2중 3중으로 안전하다는 판단이 섰다. 스쿨존으로 매일 출근하는 인간에게 안전 감각과 계산은 매우 중요하며 일반인보다는 확실히 보수적인 결정을 하기 마련이다. 오늘 나의 결정은 정속 주행으로 교차 지점 통과였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나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97%의 확률로 나의 결정을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3%의 확률이 현실로 굳어졌다. 자전거 남학생은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급기야 엉덩이를 들어 가속했다. 체인에 체중이 실리며 육박해 온다는 걸 시시각각 느낄 수 있었다. 설마설마하는 사이 자전거는 스케이트 날처럼 미끄러져 내려왔다. 분명 나를 들이받으려는 것 같았다. 급히 발목을 틀어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블랙박스에서 경고 알림이 울릴 세기의 강한 동작이었다. 그러는 사이 자전거는 지속적으로 돌파를 실시하여 실시간으로 차와 가까워졌다.


앗!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차는 교차로를 넘지 못하고 정지했지만 자전거의 움직임을 예상하면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표적에 꽂히고야 마는 것처럼 나는 거대한 표적이 되어 멈춰 섰다. 핸들을 꽉 붙잡았다. 분명 큰 소리가 나고, 인간 화살은 어디론가 날아가거나 처박힐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는 화살과 달리 자유 의지를 지니고 있었으며 차와 부딪히기 직전 몸을 크게 기울여 땅과 45도 각도를 형성했다. 뒷브레이크를 잡아 약간 감속을 하는가 싶더니 쇼트트랙 선수가 코너를 돌아나가는 느낌으로 차체를 스쳐갔다. 내 심장은 딱딱하고 건조한 리듬을 미친 듯이 두드려댔다.


잔상이 얼룩처럼 내 눈에 남았다. 학생의 검은색 가방 끈이 금방이라도 내 뺨을 찰싹 때리고 지나갈 것 같은 오감각에 휩싸였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은 채 몇 초를 보냈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룸밀러로 뒤에서 다가오는 차량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제정신을 차리고 교문을 통과했다.


이상이 오늘 출근길에 내가 겪은 일이다. 이것은 오늘 일어나야만 했던 일이고, 결과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혹시 죽음도 그림자처럼 내 바로 뒤에 붙어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아서 그렇지 생사의 갈림길은 불규칙적으로, 내 의지와 무관하게 들이닥친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삶을 마감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나는 갑자기 오늘 하루가 절절히 생생해져서 아이들에게 조금만 화냈다. "조용히 해!"라고 말할 것을, "조용히 합시다."라고 했다. 자전거는 친절한 선생님이 되라는 계시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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