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현재 두 집 살림 중이다. 주중에는 동해, 주말에는 강릉에 머문다. 왜 굳이 번거롭게 두 집을 오가냐면 직장과 아이들 유치원 때문이다. 내가 출근하는 학교는 삼척에 있다. 아내 학교는 동해에 있고, 딸들은 아내 학교 근처의 유치원에 다닌다. 모두 동해 집에서 다니기에 최적화된 경로다. 만일 강릉에서 출퇴근을 한다면 편도 기준으로 최소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중간에 아내와 딸을 내려주고, 러시아워 출근길을 돌파해야 하는 것이다. 퇴근길은 출근길의 역순이 될 것이고.
이런 이유로 우리는 동해 집 계약 만료 기간(여긴 전세)인 12월 초까지 머물기로 했다. 그 까닭에 대출을 내야 했지만, 도저히 번잡한 출퇴근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내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자기 같으면 분양받은 신축 아파트니 인테리어 싹, 가구 착착 넣어서 예쁜 집에서 다닐 거란다. 무엇보다 대출까지 내가면서 두 집 살림하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흠, 사람마다 우선순위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실감했다. 나는 아무리 새 집, 새 동네가 멋져도 바빠서 여유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느긋한 느낌이 좋다. 한가롭게 멍 때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야 행복한 인생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대출이야 뭐, 알뜰하게 절약하는 집에서 이자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돈으로 시간과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면, 그것이 사치의 목적이 아닌 이상 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 집 살림의 단점도 있다. 새집이다 보니 자잘한 하자보수 거리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6일 전 작은 방 보일러 온도 조절 패널이 잘 안 되어서 AS를 맡겼다. 보통 AS는 주중에 이루어지기에 나는 기사님께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려드린다. 그날도 기사님과 전화통화로 일을 마쳤다. 기기 고장은 아니고 나의 조작 미숙으로 인한 단순 오해였다. 괜히 헛걸음하게 해 드려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다 끝난 줄 알았다.
그 이후 우리 부부가 주말에 백신을 맞아서 2주 간 강릉집에 들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거실 창문 손잡이가 흔들려서 기사님이 오신다고 했다. 서재 방 창문도 한 군데 손 볼 것이 있어서 자세히 설명을 드릴 겸 온 가족이 강릉으로 향했다. 온 김에 동네에서 저녁까지 먹고 오면 딱 좋겠다며 룰루랄라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더운 공기가 얼굴에 훅 끼쳤다. 찜질방에 들어갈 때의 열기 비슷한 느낌이었다. 묘한 불안감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보일러...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우리는 항상 보일러와 전등, 창문까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집을 나선다.
설마, 왜 이렇게 발바닥이 뜨거울까. 아이들까지 너무 덥다고 손부채질을 한다. 설마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방과 서재 방의 보일러가 설정 최고 온도인 35에 맞춰져 있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러 다른 방을 살펴봤다. 거실과 안방, 드레스룸은 최저 온도로 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설정해 둔 값 그대로이다. 불현듯 16일 전의 전화통화 내용이 떠오른다.
"제가 여기 작은 방 두 개 온도 조절 다 해봤거든요. 정상적으로 잘 돼요. 끝까지 잘 내려가고, 끝까지 잘 올라가요."
기사님은 나를 안심시키며 온화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온화한 목소리와 달리 그분은 보일러 설정 값을 업화의 온도에 맞춰 놓은 채 집을 떠났다. 그리고 집은 16일 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창문이 닫혀있었다. 열이 마구 새지는 않고, 온도도 천천히 떨어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무려 최고 온도로 16일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서 소모해 버린 소중한 화석연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심하게 떠난 AS 기사를 탓해야 하나, 자기 집을 16일 간이나 방치해 두고 들여다보지 않은 주인을 탓해야 하나. 화를 내어도 탄소화합물로 변해버린 가스는 돌아오지 않고, 거액이 예상되는 나의 예비 가스청구료는 줄어들지 않는다. 나는 의미를 부여해야만 고통이 완화될 것 같아 뜨거워진 머리를 마구 굴렸다. 열이 받아서 뜨거운 건지, 방바닥이 더워서 뜨거운 건지 헷갈리는 가운데 나는 베이크 아웃을 생각했다.
약한 아토피 증세가 있는 우리 첫째. 그래서 우리 부부는 닷새간 보일러를 부지런히 돌리고, 삼 주 간 피톤치드를 뿌렸다. 새집 냄새가 나지 않는 우리 집. 그런데 그걸로 모자라서 16일 간 베이크 아웃을 더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건 새집 증후군을 뿌리째 박멸하라는 운명의 신호다.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우주의 계시이며, 보일러 성능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별난 과학 실험 정신 그 자체인 것이다. 또 뭐가 있을까. 나는 도시가스비를 계산하지 않기 위하여 뜨거운 머릿속에서 뜨겁게 미쳐버린 생각만 계속하다가, 밖에 나와 차가운 초밥을 먹고 동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나는 단지 조금 길게 베이크아웃을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