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학교의 맛

봉구스 밥버거와 김만덕

21.11.09

by 이준수

열한 살의 인생에도 가치의 우선순위가 있다. 돈과 가족과 성공 사이에서 고민한다. 이건 국어 시간에 김만덕을 배우다가 나온 이야기다. 김만덕은 정조 시대에 전 재산을 들여 굶주린 제주도민을 살린 사람이다. 선행이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가 '제주 여자는 섬을 벗어날 수 없다'는 법을 깨고 한양에 초대되어 용안을 뵙고, 금강산 여행까지 마친 위인.


금전적 성공과 명예를 모두 누린 사람 앞에서 채승이는 입이 쩍 벌어졌다. 마냥 놀라서 벌어진 입은 아니다. 앞뒤가 뒤엉킨듯한 고민이 있다. 채승이에게는 가족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우선 순위를 고르는 질문에 채승이는 성공을 골랐다. 뭔가 부연해야 할 말이 있는지 다음 친구 차례로 넘어가야 하는 나를 붙잡았다.


"가족을 위해서 성공하려는 거예요.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돈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성공해야 돼요. 김만덕도 돈이 있었으니까 쌀을 샀겠죠. 그런데 성공하려면 시간을 쏟아야 해요. 가족에게 소홀해질 수 있다 말이죠. 어어 하는 사이에 시간이 가고, 가족들하고 멀어지면 어쩌지..."


뱀이 제 꼬리를 잡아먹는 것처럼 '성공 지향' 채승이는 말의 고리를 돈다. 같은 '성공' 선택지를 고른 수혁이가 말을 거든다.


"사업해서 한 번 크게 돈 벌면 된다니까. 회사 다니는 사람처럼 맨날 출근 안 해도 돼."


부럽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사람. 누군가에게 성공한 사업가 이미지는 제법 여유 있는 모습이다. 자유롭게 시간을 쓰면서, 가끔씩만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나머지는 인생의 단맛을 즐긴다. 그러자 '가족'을 첫 번째 가치로 꼽은 요빈이가 반박한다.


"사업하다가 망하면 어떡해? 아빠가 그랬는데, 사업해서 성공하는 사람 별로 없고 망하면 빚만 생긴다던데."


끄덕끄덕, 이것도 맞는 말이다. 굵직한 돈을 만지려면 진입장벽을 넘어서야 하고, 기회비용도 치러야 하며, 시대 상황과, 운이 받쳐줘야 한다. 그걸 가만히 듣고 있던 민석이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봉구스 밥 버거 문 닫았어. 가게 안에 의자 하나도 없던데."

"맞아 나도 봤어. 거기 3500원 주면 양도 많고 가성비가 죽여줬지."

"아! 그 앞에 지나다가 애들 밥 버거 먹는 거 보이면 뺐어먹었는데."


수업은 종료 몇 분을 남기고 봉구스 밥 버거 얘기만 밥알처럼 늘어나다가 끝났다. 봉구스 밥버거 사장님도 처음에는 김만덕을 꿈꾸지 않았을까. 여기는 학교 근처고, 학원가도 있고, 아파트촌이니까, 학생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저렴하고 든든한 분식 메뉴를, 그렇다고 떡볶이나 김밥처럼 너무 흔하지도 않은 음식을 팔면 성공할 거라는 바람을 가지고 가게를 열었을 것이다.


본사에 가입비를 내고, 인테리어 기준에 따라 얼마 간의 공사 대금을 지불하고, 지정된 재료 납품 업체와 다소 불만이 생길 법한 가격으로 거래를 하고,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 들지만, 그럼에도 장사를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 프랜차이즈가 나을 거라는 자기 위로를 하며 정성껏 밥을 퍼고 햄을 구웠을 테다.


"나는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선생님도 네가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


격려에 힘 입어 '성공파' 아이들은 기합을 넣으며 저마다 부자가 되겠노라 다짐했다. 이 중에 누군가는 알바를 하다가 자영업의 지난함에 학을 떼며 시청 공무원이 되겠노라 각오른 다질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대성해서 메르세데스 뒷자리에 앉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김만덕이 교과서에 실린 건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라, 사재를 털어 사람을 구했기 때문이다.


자기 한 몸, 자기 가족 한 테두리도 건사하기 힘든 세상에서 남까지 구하라는 말은 지나친 부탁일지 모른다. 나는 아이들이 열한 살의 파이팅 넘치는 기운을 기억하며 즐겁게 살면 좋겠다. 산에 씨앗 떨어져 자라나는 나무들처럼 우리도 어쩌다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것뿐이니까. 문득 지나가다가 어디든 봉구스 밥버거 매장이 보이면 들어가 가장 비싼 메뉴를 주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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