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4학년 1반에 가서 토론 수업을 했다. 수업 횟수는 총 세 번, 대상 도서는 루리 작가의 <긴긴밤>이다. 우리 교실에서 하던 수업을 그대로 옮겨가서 한 것인데, 1반 아이들이 쓴 소감문을 오늘 받았다.
'책으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지루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할 얘기가 많았습니다.'
'집에 가서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좋았다는 얘기가 대부분이다. 토론할 때 표정이 밝고, 다들 적극적이라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구나 여겼는데 반응이 극적이다. 이 반응에는 단순히 수업 그 자체의 즐거움도 있겠지만, 책이라는 매체를 재발견했다는 기쁨이 공통적으로 깔려있다. 책. 어째서 아이들은 책으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행위에 이렇게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가. 사실 흔해빠진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다가, 마음을 고쳐 먹었다.
책이라는 물자는 넘쳐 나지만, 정작 진지하게 독서하는 사람은 드물고 다른 사람과 의견이나 감정을 공유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특히 문자가 잔뜩 들어있는, 만화책이 아닌, 그림책이 아닌 일반적인 줄글의 경우는 상황이 제법 심각하다. 책이 설 자리가 줄고 있다. 이것이 나의 잠정적인 결론이었다.
독서란 결국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 시간 빼앗는 수단이 어디 책뿐인가. 책 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별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는 소일거리는 널려있다. 비디오 게임과 SNS, 넷플릭스와 유튜브 정도만 떠올려 보아도 어마어마하다. 나는 생을 모두 바쳐도 디즈니 플러스에 올라온 드라마를 전부 섭렵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출판사 편집장님과 밥을 먹다가 소년원 독서 수업이 화제에 올랐다. 어떤 고등학교 선생님이 신촌정보통신학교(소년원) 수감 청소년을 대상으로 독서 활동을 했는데, 세간의 편견과 달리 엄청난 호응과 관심 속에서 '교실보다 훨씬 몰입된 상태'로 수업을 마쳤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책 말고 달리 놀 거리가 없어서.
소년원은 엄격한 규칙 아래 행동의 제약이 많은 곳이다. 그럼에도 선생님이 추천한 책은 권장되고 지지를 받는다. 교화와 교육의 일환이므로. 스마트폰이 사라진 곳에서, 책은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소감을 듣고, 글을 쓰면서 마음을 내어 보일 수 있으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모두 소년원으로! 같은 농담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두 발 자전거도 균형을 잡은 이후부터 재미가 붙듯이 책도 그 안에 파묻혀 시간을 잊고, 파묻힌 시간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바나나를 껍찔째 먹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에도 진입장벽이 있다. 아무래도 토론 수업이 그 벽에 균열을 내었던 듯하다.
나는 '천지가 개벽하는데 학교만은 그대로'라고 비판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이지만, 그나마 있던 멀쩡한 것도 망가뜨리는 천지개벽도 있으므로 책이라는 구식 무기를 붙잡고 말하기와 글쓰기라는 중세적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시대착오적 돈키호테면 어떤가, 돈키호테 책은 잘만 팔리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