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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으로 꽃피우는 꿈

월간아침독서170호 - <일러스트레이터 에런의 첫 번째 이야기>

by 이준수
그림1.jpg 표지 ⓒ천개의 바람

생활기록부에는 사진이 들어가는 칸이 있다. 4학년 담임교사를 맡아 생활기록부를 정리하다 보면 우리 반 아이의 1학년 사진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입학 무렵에 비해 자신감 넘치고 표정이 한결 밝아진 친구가 있는가 하면 여덟 살의 생기와 발랄함이 쓸쓸하게 사라져버린 친구도 있다. 사진으로 아이의 학교생활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에런의 첫 번째 이야기』는 초등학교 입학 후 의욕을 잃었다가 다시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우뚝 선 아이가 나오는 책이다. 주인공인 에런은 이야기가 풍부한 집에서 태어난다. 달콤한 재스민 향기가 스민 정원에서 가족들의 음악 같은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에런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날마다 색연필이며 크레파스를 가지고서 어린 꽃나무를 그린다. 하지만 그림 그리기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누군가가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순간이다.


에런은 진심으로 읽고 쓰기를 배우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옆에서 누군가가 도와주어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말소리가 글자나 단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파악하는 데 뇌가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에런은 난독증이 있다.


입학식 날 에런은 해바라기처럼 노란 양말을 신고, 양귀비처럼 빨간 점퍼를 입고 학교에 간다. 너무 신이 나서 왠지 읽기도 잘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에런은 읽지 못한다.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가도 마찬가지다. 다른 친구들처럼 잘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점차 명확해진다.


에런은 불안한 속마음을 숨기기 위해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2학년 담임선생님이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써서 발표하라는 숙제를 내준 것이다.


그림2.jpg 에런과 친구들 ⓒ천개의 바람

여기까지 읽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우울한 에런의 얼굴이 꼭 수학 시험지를 받아든 우리 반 학생 같았다. 누구나 자신 없는 분야의 숙제를 받아들면 기운이 쑥 빠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사랑하는 에런은 숙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밤을 새워, 새벽녘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쓰고 또 쓴다. 겨우 이야기를 완성했건만, 더 큰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에런은 종이에 적은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읽어야 한다. 과연 난독증이 있는 에런은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나는 에런에게서 나 자신과 우리 반 아이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을 모두 보았다. 우리도 어떤 분야에서는 난독증을 앓는 에런처럼 미숙할 수밖에 없다. 내가 조금 부족해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라일라 선생님과 친구가 있으면 괜찮다. 멋지게 성공한 에런만큼이나, 에런을 받아주고 격려해주는 에런의 친구들이 멋지다. (초1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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