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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추가 공부는 달리기로 시작

by 이준수

월요일은 오후 추가 공부가 있는 날이다. 6교시를 마친 아이들이 한 시간 이십 분 간 또 공부를 해야 한다. 열두 살 아이 체력으로는 답답하고 지루한 일정이다. 몸과 마음을 말끔하게 환기시켜 주는 일정이 필요하다. 나는 6교시가 끝난 후 두 아이와 운동장으로 나갔다. 우리 학교 운동장에는 천연 잔디가 심겨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손수 관리를 해주셔서 상태가 좋다.


"하나, 둘, 셋 하면 다 같이 한 바퀴 뛰는 거야!"


남자 셋이서 운동장을 달렸다. 잔디 운동장은 폭신폭신했다. 겨울이라 갈색으로 물이 빠진 잔디는 카펫 같다. 운동장 한 바퀴는 200m. 우리는 양팔을 앞뒤로 흔들고, 두 다리를 빠르게 교차하며 질주했다. 교실에서 운동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1분. 실내화를 운동화로 갈아 신는 사이 세계가 바뀐다. led 전등 대신 따뜻한 태양 아래 서면 계절이 몸으로 쏟아진다. 우리는 그저 달리면서 계절을 흡수하기만 하면 된다.


고작 1분 남짓 달렸을 뿐인데 후련하다. 수학 문제집 앞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무기력이 증발해 버렸다. 달리는 두 아이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다. 한 걸음 한 걸음 땅을 박찰 때마다 지구에게 "나 여기 살아있다!" 외치는 것만 같다.


나는 달리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쉬는 시간에 또 달렸다. 힘들면 걸어도 된다고 했지만 역시나 전력질주. 200미터는 걷기에 아쉬운 거리다. 이 정도는 무조건 내달려야 한다. T는 와다다다다 달렸다. T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와다다다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오후 추가 공부를 하면서도 이렇게 기쁠 수 있다니. 아이들도 머리가 더 잘 작동하는지 문제를 쑥쑥 푼다. 기특해서 특제 큰 간식 선택권을 주었다. 두 다리와 뇌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모든 경험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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