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30
경포호수를 뛰어서 한 바퀴 도는 느낌은 굉장하다. 경포는 둘레 4.3km의 거대한 거울. 나는 그 거울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봄이면 벚나무 새순을 보러, 여름이면 연꽃 향기를 맡으러 경포를 찾았다. 가을에는 낙엽이 지는 풍경 속에서 걸었고, 겨울에는 고니 가족을 찾아 헤맸다. 언제 와도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는 호수의 존재가 든든했다. 심지어 집에서 차로 십 분 거리라 참으로 자주 왔다. 항상 느리게 감상하던 경포를 처음으로 뛰었다.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한 바퀴 전체를.
경포 도전을 위해 평일에 동네에서 3-4km 달리기 연습을 했다. 아마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달리기'라는 행위의 기술을 고민한 일주일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간 '막' 달렸다. 러닝이라는 행위를 본격적으로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살다보면 교차로 초록 신호등이 깜박이거나 아이와 술래잡기를 하며 자연스레 뛰게 된다. 일상적으로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길어봤자 이십 초 내외의 달리기는 크게 기술을 요구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막 달려도 된다. 하지만 3km가 넘어가는 달리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구잡이로 뛰는 방식으로는 안정적으로 뛸 수 없다.
가령 나는 뛸 때 팔을 크게 휘두르는 편이었다. 앞으로 팔을 슉슉 들어올리는가 하면, 힘들 땐 양옆으로 흔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뛰기 위해서는 90도 내외의 자세가 좋았다. 팔도 앞으로 맹렬하게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뒤로 '찌른다'는 감각을 유지해야 했다.
호흡도 엉망이었다. 평상시의 호흡이라 해야 명상을 제외하고는 의식하지 않고 지냈다. 편하면 '흡흡', 가쁘면 '하하'. 반사적인 호흡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막 숨쉬기'로는 안정적으로 달릴 수 없었다. 달리기 리듬과 전혀 맞지 않았다. 두 다리는 왼발, 오른발 착착 움직이는데 숨은 '후아아 흡 하아 하하 킁' 같이 제멋대로 흐트러졌다. 호홉이 망가지자 다리도 꼬여버렸다. 그러다 발견한 호흡법이 두 번의 들숨, 두번의 날숨. 발의 움직임에 맞춰 흡흡-하하. 이건 꽤 괜찮았다.
나는 일주일 간 새로 장착한 호흡법인 '흡흡 하하'를 주무기로 경포를 돌았다. 평균 페이스는 1km 당 6분 52초. 첫 시도치고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분 당 스텝수를 의미하는 평균 케이던스는 157이 나왔다. 나는 이 수치를 165까지 올리고 싶다. 체형과 보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엘리트 마라톤 선수들은 180 이상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잡지에서 케이던스 180이라는 수치를 읽었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뛰어보니 괴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호숫가에서 놀던 물닭이 잠수를 했다. 그 자리에 작은 동심원이 퍼져 나갔다. 보기만해도 귀여움이 물씬 묻어나는 논병아리가 어디론가로 재빨리 나아갔다. 다들 움직이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거겠지. 나름의 목표도 있고. 경포호수는 제각기 움직이는 생물을 품에 안고서 아무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