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0
러너가 되면 지방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과 1박 2일 여행을 했다. 장소는 충청북도 단양군. 멤버 모두에게 연고는 없지만 대략 국토의 중앙쯤이라 정했다. 도담삼봉을 시작으로 석문을 살펴보고 카페 산에 올랐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위로 독수리가 까마귀 떼에 쫓기고 있었다. 무리를 형성한 까마귀와 까치는 깡패다.
일동이 자연의 신비에 감탄하는 동안에도 나는 자꾸 강변의 산책로가 눈에 들어왔다. 단양군에서 비용을 들여 잘 가꾼 티가 나는 훌륭한 러닝 코스였다. 그러나 영하 7도의 날씨에 얼어붙은 남한강의 풍광을 감상하며 운동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러너 입장으로서 참으로 아까운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나 역시 일행과 함께 움직이는 터라 입맛만 다셨다. 우수한 러닝 코스를 보고 군침이 도는 건 무슨 까닭일까. 뇌에서 러닝을 일종을 탐미 또는 탐식과 비슷한 자극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숙소인 단양 소노벨에 들어와서는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거실 창 밖으로 하얀 얼음으로 덮인 남한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여지없이 잘 정비된 산책로. 지도앱을 켜 보니 편도로만 따져도 길이가 3km 이상 되었다.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셔도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단양의 공기. 한적한 강변을 나 홀로 달리며 깨끗한 숨을 내쉬면 얼마나 행복할까. 저절로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녁이 되어 유명하다는 쏘가리 요릿집으로 걸어갔다. 쏘가리 회와 매운탕, 떡갈비, 새우튀김이 나오는 4인 세트 구성이 22만 원이었다. 혼자 또는 우리 가족끼리 갔다면 '잡어 매운탕'이나 먹고 나왔겠지만, 애주가 친구들은 과감히 가장 비싼 메뉴를 시켰다. 그래, 삶의 변칙성 또한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든든하게 에너지를 채워 신나게 달리면 그만이다. 귀하신 쏘가리로 파티를 하고 치킨 안주로 바뀐 숙소 내 술자리는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평소에는 오후 7시, 늦어도 8시 전에는 모든 식사를 마치고 금식이다. 그렇지만 여행지에서 그런 것들을 일일이 지킬 수는 없다.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전날의 엄청난 영양 공급 덕분인지 눈꺼풀이 자동으로 올라갔다. 다리에 힘을 비축한 나는 결국 다음 날 아침 꿈에도 그리던 남한강을 달렸다. 1.2km의 짧은 코스였지만 솜털처럼 하얀 얼음가루가 날리는 남한강은 굉장했다. 단단히 여민 롱패딩 아래로 땀이 뻘뻘 났다. 기온은 영하 11도였다. 지방은 참으로 좋구나. 어딜 가나 여유롭게 최적의 컨디션을 갖춘 자연 길에서 달릴 수 있다. 수도권 과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방을 비움으로써 여행하는 러너에게 멋진 선물을 안겨주었다. 근사한 러닝에 감사하는 의미에서 지역 식당과 상점에서 돈을 팍팍 쓰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