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린 거리 만큼 할인해주는 커피

2026.02.22 강릉 책방 아물다

by 이준수

세상에는 커피를 싸게 마실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통신사 할인은 물론, 생일 쿠폰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태어나 처음으로 '달려서' 커피를 할인 받았다. 강릉 책방 '아물다'는 러너 책방지기 님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아물다라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전에도 알았다. 그렇지만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러닝 위드 리디아드>를 읽다가, 번역가 소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중현, 강릉에서 책방 '아물다' 운영


책은 번역서 임에도 문장이 매끄러웠다. 무엇보다 놀란 건 중간중간 전문적인 내용이 등장할 때마다 '옮긴이'의 해석이 시기적절하게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가령 파틀렉을 예로 들어보자. 파틀렉은 스웨덴어로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달리는 훈련'이다. 빠르게도 달렸다가, 천천히도 달렸다가, 언덕에도 올랐다가, 내리막길을 내달리는 흥미로운 방법이다.


러닝 전문가라면 '파틀렉'이라는 말만 들어도 훈련 장면이 눈에 그려질 것이다. 그러나 초심자나 문외한에게는 낯설 수 밖에 없다. 그런 순간에 옮긴이가 개입하여 알아 듣기 쉽게 설명하는 문장이 책에 수시로 나왔다. 본인이 러너가 아니고서야 나오기 힘든 표현이랄까, 그런 생생하고도 요령있는 부분이 돋보였다. 어떤 사람일까. 나는 궁금증이 일었다. 당장 '아물다' 책방지기를 만나고 싶었다.


"오늘 뛰고 오셨을까요?"


커피를 주문한다고 하자 그 유명한 러닝 마일리지 할인을 제안받았다. 나는 얼른 워치를 내밀었다. 10.87km. 나는 10%를 예상했다. 10.87% 할인은 조금 이상하니까. 그런데 사장님은 쿨하게 올림하여 11% 할인을 적용해 주었다. 가족 넷이 카페라떼, 말차라떼, 딸기라떼 두잔, 아몬드 쿠키 하나, 서비스 미니 붕어 빵을 먹는데 2만원이 들지 않았다.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오면 커피가 공짜라고 했다.


달리기를 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커피까지 저렴하게 준다니! 심지어 사장님은 여러 풀마라톤을 완주하고, 울트라 마라톤 100km를 뛴 경력도 있었다. 나와 아내는 첫 만남이었지만 내적 친밀감이 폭발하여 버렸다. 우리는 갑자기 무장해제 되어 버렸다.


아물다는 책방과 러닝용품 숍을 겸하고 있었다. 우리는 에너지 보충용 '러닝젤'의 실물을 처음 목격하였다. 그 앞을 기웃거리고 있자 책방지기님이 붙임성 있게 젤 종류를 설명해 주셨다. 아미노산과 글리코겐, 당과 나트륨이 등장하는 꽤나 전문적이고 빠른 조언이었다. 러너니까 대충 이해할 수 있지? 이런 느낌이었고 나는 책방지기님의 전문성에 깊은 신뢰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청포도맛 연두색 상자를 샀다. 상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과 탄수화물이 들어있는 성분표를 스윽 보고 골랐다.


상상 속에서 에너지젤을 먹은 우리는 도파민이 터져버렸다. 선반에 전시되어 있는 양말을 여섯 켤레 샀다. 종류가 여러 가지라 사장님이 제법 괜찮다고 추천한 '킵런 - 두 켤레가 한 세트인 얇고 탄력있는 제품'을 골랐다. 인터넷이나 쿠팡으로 검색조차 하지 않았다.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한 분이 좋다는데 13km 뛰는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러닝 책을 모아놓은 서가는 우리의 꿈에 나오는 풍경에 가까웠다. 상당히 오랫동안 공들여 구성한 러닝 서가는 그간 여러 도서관을 전전하면서도 보지 못한 책들이 많았다. 아내는 완전히 하이 상태가 되어서는 다섯 권을 폭풍 구매해버렸다. 매 구매마다 사장님과 계속 수다를 떨었다. 취미가 맞으니 친구를 대하듯 호감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제가 러닝 크루도 운영하고 있어요. 나중에 인스타 공지 뜨면 모임 때 게스트로 놀러오세요."


네, 네, 꼭 갈게요. 나와 아내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아물다를 나왔다. 아참, 사장님이 내려준 라떼는 달리기 후 체력과 온기를 회복하는데 맞춤인 음료였다. 강릉을 방문하는 러너가 있다면 꼭 들러 보시길.


매거진의 이전글온 가족 달리기, 울진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