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26
반가운 비가 내렸다. 겨우내 동해안에는 눈도 비도 거의 내리지 않았다. 건조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바닷가 사람들은 산불이 두려워진다. 이대로 가다간 흙이 바싹 말라 버릴 거라는 불안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은 비 예보가 없었다. 그러다 오후부터 한 방울씩 얼굴에 떨어졌다. 밤이 되자 띄엄띄엄 떨어지던 물방울은 빗줄기가 되었다.
고마운 비가 내리니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방수가 되는 트레일 러닝화를 신고 우산을 들었다. 트레일화는 아웃솔에 특수한 돌기가 나있어서 덜 미끄럽다. 오른손에 우산을 들고 천천히 뛰었다. 투둑투둑 빗방울이 우산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폰을 끼고 달리고 있었는데도 잘 들렸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끄고 볼륨을 더 낮췄다. 음악만큼이나 빗소리가 좋았다.
우산을 들고 달리려니 은근히 무거워서 오른손 왼손 번갈아 들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달리는 행인을 보았다. 우산을 미쳐 챙겨 오지 못했거나, 이 정도 비쯤이야 후드로 커버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는 비를 맞으며 터덜터덜 걸었다. 뛸 마음은 전혀 없어 보였다. 머리숱이 아직 풍성한 나이대에 부릴 수 있는 여유다. 저 시절에는 체온이 뜨겁고, 모발도 두껍다. 굳이 달리지 않아도 딱히 손해 볼 것이 없다. 하지만 머리가 벗어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나는 우산을 썼다. 나이도 한국식으로 마흔이다. 치기 부릴 나이는 한참 지났다.
우중 달리기는 14분 만에 종료되었다. 거리는 2.3km. 비 맞는 나무들이 기뻐하는 느낌이 들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무들이 행복해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건 향기, 움직임, 빛깔, 미묘한 화학적 반응 같은 것들이 어우러진 분위기다. 그 속에서 달리면 몸이 치유되는 기분이 든다. 메마른 날에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서라도 달리는 게 좋다. 나무 옆에서 달리면 우중 러닝에만 받을 수 있는 선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