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대회는 거대한 추진제

2026.03.01

by 이준수

혼자 뛰는 것과 여러 사람이 함께 뛰는 것은 전혀 느낌이 다르다. 지금껏 나는 혼자 뛰어왔다. 아내와 연습을 가더라도 각자의 페이스대로 뛰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31절 달리기 대회에는 천 명의 주자가 참가했다. 나름 빨리 접수한다고 했는데 팔백 번 대 배번을 받았다. 출발 삼십 분 전에 운동장에 도착했다. 비가 계속 내렸다. 미리 준비한 우비를 입고 몸을 풀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날씨에도 쇼츠에 싱글렛 차림의 러너가 눈에 띄었다. 맨살이 드러난 몸에서 희미한 김이 피어올랐다.


이번 건강 달리기 대회의 코스 길이는 9.07km. 강릉 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하여 경포호를 한 바퀴 돌아오는 일정이다. 탕! 소리와 함께 주자들이 일제히 달려 나갔다. 내 어깨를 거칠게 치고 나가는 젊은 남성도 있었다. 굉장히 다급해 보였다. 어깨를 툭툭 털었다. 대회는 역시 다르구나, 다들 치열하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첫 1km를 5분 00초로 마쳤다. 말도 안 되는 오버페이스였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것이 있다면 '초반 내달리기'다. 달리기 대회장에는 특유의 흥분된 분위기가 있다. 자칫하면 숙련된 러너의 페이스에 휘말려 내 속도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초반 2km까지는 무조건 6분으로 뛰는 거야! 무리하지 말자! 머릿속으로 누누이 되뇌고 갔다. 그러나 몸은 머리보다 먼저 반응했다.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사람들 틈에 나도 휩쓸려 버렸다.


숨이 찼다. 은행에 대출받는 것처럼 산소와 에너지를 당겨 쓰는 바람에 3km 지점부터 곤란한 느낌이 들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가운데 내 페이스도 조금씩 떨어졌다. 흡흡 하, 흡흡 하. 호흡에 집중했다. 완주를 하려면 숨 쉬기 편한 페이스까지 내려와야 했다. 5km 지점에서는 주머니에 있던 ABC 초콜릿을 까먹었다. 차츰 에너지 흐름이 돌아왔다. 코스 중간중간 생수병을 주시는 자원봉사자 분들이 계셨다. 그분들은 쉼 없이 "파이팅! 얼마 남지 않았어요!"를 외쳐주었다. 신기하게도 힘이 솟아났다.


통제된 도로를 쉼 없이 달렸다. 휴일을 맞아 경포를 찾은 차량은 길게 늘어졌다. 차 안에서 대회에 참여한 러너를 본 적은 있었지만, 도로를 직접 내달리기는 처음이었다. 텅 빈 도로는 쾌적했다. 언덕을 올라 마침내 결승점을 지났다. 페이스는 5분 47초. 첫 대회이자 첫 기록이므로 당연히 나의 PB(Private best 개인 최고 기록)였다. 연습 때보다 기록이 더 좋았다. 대회 자체가 거대한 추진제나 마찬가지였다.


결승점에서 카메라를 켜고 아내를 기다렸다. 곧이어 환한 표정의 아내가 손을 위로 뻗으며 운동장에 들어왔다. 아내도 6분 29초 페이스로 개인 최고 기록을 찍었다. 우리는 자원봉사자 분이 타주시는 맥심 모카골드를 받아 들고 기념품 줄에 섰다. 살살 내리는 가는 비를 맞으며 마시는 믹스커피는 훌륭했다. 몸에 바로 흡수되는 맛이었다. 아내는 원두를, 나는 여행용 백팩을 상품으로 받았다. 취미 러너에게 달리기 대회는 축제다. 달리기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선물을 손에 쥐고 귀가하는 느낌이 좋았다. 풍요로운 각성제, 함께 달리는 길에는 다리를 자극하는 요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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