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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Sep 13. 2018

괌이 뭐길래

18.09.13

나는 어떤 것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편이다. 얼마 전 우리 가족은 다음 해 1월 즈음 해외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6년 넘게 부은 본가 여행 계좌가 500만 원을 돌파했기도 하고, 연재가 18개월을 넘기는 시점이라 슬슬 시도해 볼 만 했다. 여행 가능 날짜는 방학이 시작되는 1월 18일부터(무려 방학식이 1월 17일이다) 2월 3일까지. 4개월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님, 우리 부부, 연우 연재, 동생까지 7명이 가야 했으므로 항공권과 숙소 예약이 시급했다.


지난 4일 간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스카이 스캐너 항공권 검색과 호텔 리뷰, 여행 후기를 분석하는데 할애했다. 이태리 신혼여행 이후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이라 무척 설렜고, 특유의 여행 가이드 기질 때문에 두뇌 활동량이 최대치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금요일 출발 비행기나 설 전날 도착하는 비행기 표가 비싸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18개월 연재를 데리고 새벽 출발 도착 비행기는 무리라는 현실도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방학이라는 최대 이점을 이용해(참고로 나와 아내, 동생이 모두 교사라 방학 특수가 있음) 주중 출발, 도착 신공을 발휘하면 괌 5박 6일 왕복 항공권과 4성급 호텔을 500만 원 안쪽에서 맞출 수 있었다. 괜찮은 날짜 선택지 3가지 정도를 추렸다. 며칠간 괌 오타쿠가 되어 몰두한 보람이 있었다.


기왕 갈 거 미리 예약하는 게 속편 할 것 같아 동생과 오전에 이야기를 마쳤는데 오늘 점심때 날벼락이 쏟아졌다. 동생네 학교가 1월 23일부터 31일 출근이라는 것이다. 유일한 대안은 나머지 가족은 1월 31일에 출발(동생은 다음 날 비행기로 괌 입국) 2월 4일(설 전날) 입국인데 설 연휴 기간 비행기표와 호텔 가격이 올라 예산을 초과했다. 그렇다고 애들 고생시키면서 새벽 심야 비행기를 잡을 수도 없는 노릇(다혜도 결사반대). 마지막 선택지를 예진이한테 제안했다.


"그럼 19, 20, 21, 22일 3박 4일로 오키나와 가자. 비행 시간대도 알맞고, 비행 거리도 짧고, 비용도 괜찮고. 어때?"

"싫어. 난 위안부 할머니 후원해. 방사능은 또 어떻고 애들 데리고 일본 가는 거 정신 나간 짓이야."

"캐논 카메라 쓰고 유니클로 입는 애가 뭔 유난이야. 그리고 오키나와 대만 옆에 있는 섬이야. 방사능이랑 한참 떨어져 있다고. 너무 비과학적인 거 아냐?"

"그래 난 유난병 환자라 안 들려. 아무튼 나는 절대 안 가."


동생과 싸웠다. 제길, 이러면 여행 갈 수가 없다. 친구가 반대했으면 네 가치관과 의사가 그러니 어쩔 수 없지 하고 넘겼을 텐데 동생이라서 맞부딪쳤다. 그간 들인 공이 아쉬워서 그랬을까. 아, 모르겠다. 그냥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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