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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Sep 14. 2018

어쩌다 전자책

18.09.14

책방 소파를 내다 팔았다. 연재 낳기 전 수유 대비해서 주문한 15만원 짜리 제품이었다. 어차피 잠깐 쓸 물건이었지만 원목 책꽂이와 조화를 고려해 디자인과 색상을 신중하게 골랐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니 수유 쿠션이 더 편해서 신생아 시기를 제외하고는 쓰는 일이 드물었다. 소파는 노트북 받침대, 닌텐도 스위치 하는 자리로 1년을 버텼다. 가구가 그렇듯 아무 의식없이 주인이랑 같이 늙어갔는데 위기가 찾아왔다.


"가구 치울거야."


'조그맣게 살 거야.'를 읽던 다혜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정신의 자유와 소박함을 강조하는 미니멀리즘 책이었다. 다혜는 현재 읽는 책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가급적 일상에서 저자의 메시지를 실천하려 한다. 오후 7시 30분 동해맘의 중고나라 게시물을 읽은 사람이 찾아와 3만 5000원을 주고 소파를 가져갔다. 다혜가 박수를 치며 너무 깔끔하고 마음이 홀가분하다면 좋아했다.


"오빠, 두 번 안 볼 책 다 버리자. 지금 당장."


스무 권을 뽑아 재활용 통에 담았다. 나는 책에 밑줄치고 더럽게 메모하며 봐서 누구 줄 형편이 안 됐다. 매년 중고 판매, 폐기 등으로 사라지는 책만 부부 합산 100여권을 될 거다. 손때 묻은 책이 떠나가는 게 무척 아쉬운 건 절대 아니고, 매번 치르는 처분 과정이 무겁고 귀찮았다.


"자기야 나 전자책 단말기 살거야. 비싼 거 사서 케이스 씌워 다닐거야."


다혜는 내가 용돈으로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를 산다고 하니까 군말 없이 동의 했다. 다혜는 아주 행복해 보였다. 이제 책장에 다혜 책만 꽂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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