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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수 Oct 09. 2018

저 밀성군 후손인데요, 세종 대왕님 미안해요

18.10.09

"준수야 니는 밀성군파 17대 손이데이, 세종 할배가 한글 만든거를 절대로 이자뿌면 안 된데이."


우리 아버지는 '핏줄주의자'였다. 전주 이씨 집성촌에 나고 자랐으니 자부심을 가질 법도 했는데 나는 늘 왜 친할아버지가 서당 밖에 못 나오시고 할머니는 그 서당도 못 나왔는지 되물었다. 아버지는 일제시대가 어려웠고 할아버지가 셋째라 다른 형님들 공부시키느라 그랬다고 대답했지만 그럼 왜 막내할아버지는 중학교까지 나와서 일어를 술술했을까. 지금와서야 스치는 직감은 우리 할아버지가 공부에 뜻이 없었던 게 아닐까? 할아버지 형제들은 어쨌든 그 당시 사람치고 꽤 배우고 똑똑했거든.


그럼 다시 2018년 한글날 아침으로 돌아와서, 연우에게 "너는 밀성군파 18대 손이야."라고 알아듣지도 못할 계기교육을 실시했다. 연우가 아무런 반응없이 맛있게 던킨 도넛 모찌모찌를 씹은 걸로 보아 정말 한 어절도 와닿지 않은 듯했다.


밀성군이 도대체 누구길래 육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입에 오르내릴까. 밀성군 '이침'은 신빈 김씨 소생으로 세종대왕의 18남 4녀 중 다섯 번째 서자다. 워낙 형제가 많고 정비 소헌 왕후 출신도 아니었으니 이름 없이 사라질 법도 하나 후손이 번창했고, 종친 라인에서 벼슬도 굉장히 많이 한 축에 속했다.


이유가 있었다. 밀성군은 13상 연상인 수양대군과 죽이 맞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형님을 따랐다. 피바람 분 계유정난 때도 쿠테타 세력에 가담하여 공훈을 세웠으며,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部都摠官), 의금부도위관 등 굵직한 자리를 꿰찼다. 밀성군 할배가 정치 감각이 있었다는 소리다.


따지고 보면 세종 임금은 적장자 중심의 문종과 단종을 밀었을 거고, 밀성군 할배는 조카를 친 형님 수양대군 세조를 밀었으니 서로 대치되는 선택을 한 셈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아버지는 한글날 우리 남매에게 밀성군파 17대손을 강조하셨으니,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께 죄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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