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19-20주/ 18.01.05

by 이준수

장모님


장모님은 나고자란

고향강릉 옥계에서

동네오빠 장인어른

손을잡아 결혼했네


철도직원 부인으로

박봉월급 쪼개쓰며

처형낳고 만학으로

철도대학 등록했던

남편따라 창원갔네


옆방남자 뒤척이는

이불소리 벽돌벽을

타고오는 셋방살이


안에서나 밖에서나

계절기온 고스란히

전해오는 낯선마을


작은집서 딸을품고

추운겨울 났었다네


타향에서 모진고생

다하건만 시어머닌

우리아들 공부하니

뒷바라지 잘하거라


춥다못해 심장까지

얼음칼날 쑤셔오는

차고시린 핍박속에

딸만배는 죄인되어

눈물흘린 날많았네


막내처남 태어남에

지친숨을 돌렸다네


맏며느리 노릇하랴

주중에는 보험팔고

주말에는 밭일구네


이제벌써 손녀들이

셋이되어 쉬실때도

되었는데 부모마음

서른넘은 자식들이

걱정되어 들르시네


봄왔으니 냉이란다

여름이니 포도먹자

가을이니 홍시땄어

겨울이니 귤이좋다


본인께선 옛날사람

다그렇게 살았으니

염려말게 하시지만


그누구도 기록하려

들지않는 장모님삶

둘째사위 듣고쓰네


최우철씨 아내말고

최다혜씨 엄마말고

이연우씨 할미말고

김순기로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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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겨울 찬 바람이 불어 침대 매트리스가 선득해지면 이불을 가지고 할머니, 할아버지 방으로 갔다. 도톰한 요를 깔고 솜이불을 덥으면 바닥에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뜨뜻한 바닥에 등을 지지며 할머니 이야기를 들었다.


"요 참남띠 밭에 짐성들이 다 파디비뿌가지고 농사 짓는데 애 마이 묵었다."

(최근 뒷동산 밭에 멧돼지가 왔는지 땅을 파 놓았다. 농사짓느라 힘들었다.)


나는 제2모국어로 심한 영남지방 사투리를 구사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일제 시대에 군사훈련했던 이야기, 건너 마을 어떤 아줌마(할머니는 X 같은 X이라고 하셨다. 하드보일드 내러티브.)가 곗돈을 들고 튄 일, 할아버지가 셋방 건물을 짓는다고 시멘트 포대를 날랐던 어느 여름. 시중 어떤 책에도 나오지 않는 기묘하고, 억울하고, 독특한 사연을 실컷 들었다. 할아버지는 듣고만 계시다가 중간중간 사실관계를 정정해 주시거나, 너털웃음을 짓거나, 아이고 소리를 내셨다.


모든 인간은 자기만의 책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 영향 때문일까 나는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지금도 이것저것 잘 주워듣는 편이다. 결혼하고 나서는 장모님 이야기를 들었다. 장모님은 우리 할머니처럼 말씀이 많지는 않으시다. 그래도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고 하시면서 본인의 삶을 낮추는 태도 면에서는 일치했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어른들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또 딸에게 우리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우리 서로 이야기하고 들어줘요. 같이 울고, 웃으며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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