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학교의 맛

온라인 수업 뒤에 숨겨진 말

20.04.01

by 이준수


나는 교과서를 넉넉하게 챙겨두는 편이다. 교과별로 예비용 책을 몇 권씩 가지고 있다. 교실 사물함에 교과서를 두고 다니는 게 우리 학급의 기본 규칙이긴 한데, 숙제하느라 집에 가져갔다가 빈손으로 등교하는 애들이 꼭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서넛이 책을 안 챙겨 오면 옆반에 가서라도 빌려야 한다. 한 명이라도 책이 없으면 수업에 미묘한 균열이 가고, 해당 아이를 위한 대체 자료를 마련하긴 하지만 수업의 결이 달라진다.


교과서가 갖춰졌다고 끝은 아니다. 같은 책상, 의자, 조명을 공유하고 있어도 학생의 발단 단계와 이해도에 따라 수업을 흡수하는 정도가 다르다. 선생님이 수시로 교실을 순시하고, 아이마다 질문을 달리 하고, 피드백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같은 공간에서 배움이 이루어지는 대면 수업도 이럴진대 온라인 수업은 어떨지 미리서부터 걱정이 앞선다.


오후 4시가 넘어서 긴급 지시가 떨어졌다. 학급별로 학생들 스마트기기 보유 현황을 조사해서 내일까지 보고하라고 했다. 만일 구비가 안 된 집이 있으면 학교 소유의 스마트 패드를 대여한다는 계획이 잡혀있었다. 단체 문자를 보냈더니 속속 답변이 도착했다. 역시나 집집마다 사정이 제각각이다. 데스크톱, 노트북, 스마트 패드, 스마트폰, 5G 와이파이까지 갖춘 집이 있는가 하면 스마트폰만 있는 가정도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어떠한 기기도 없어서 온라인 수업이 불가한 환경은 아니라는 점이다. 혹여나 기계가 없으면 학교에서 스마트 패드를 빌려도 되지만, 평소에 기기를 사용해 왔다는 것만으로도 학생의 온라인 접근성이 높다는 증거가 된다. 교실 수업으로 치면 교과서는 갖춘 셈이다.


자, 이제 가상 교실에 아이들을 모을 수 있게 되었으니 온라인 개학 문제없다? 만우절 농담 같은 소리다. 선생님이 수업 자료를 아무리 꼼꼼히 잘 만들고, 기기 사용에 익숙해도 학생 통제나 질의응답이 현장과 같을 수는 없다. 결국 온라인 수업을 하겠다는 말 뒤에는 학부모에게 보조 선생님의 역할을 부탁한다는 요청이 숨어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겨우 열두 살이고, 6교시를 화면 앞에서 보내는 건 극한도전에 가깝다.


부모님들께 스마트기기 수요조사를 부탁드린다고 문자를 보내면서 끝끝내 담지 못한 못한 진심이 계속 목에 걸린다.


'사실 수업을 저와 나누어하시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으나 부모님들께 짐을 지우는 일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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