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학부모 한 분께 전화를 받았다. 나는 당연히 된다고 했고 금요일 오전에 주차장에서 연락 주시면 갖다 드리겠노라고 약속을 잡았다. 2주 전에도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교과서를 배부했다. 그때 희망자를 받았는데 삼분의 일 정도만 책을 받아 가셨다. 응답률이 예상보다 낮았지만 적어도 4월 6일에는 개학을 하리라는 막연한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탓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오늘 다시 한번 개학이 연기되었고, 온라인 개학으로 가닥이 잡혔다. 사실상 언제 대면 수업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공식 선언이다. 교과서를 받아가야겠다고 판단한 학부모 마음이 이해되었다. 아이들과 눈 맞추며 상호작용하는 수업과 비교할 수 없겠으나 교과서는 그 자체로 좋은 교재다. 미리 준비해 둔 수업자료는 써보지도 못하고 책상 위에 잠들어 있다. 때를 놓친 수고로움이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어쨌건 월급이 계속 나오고 있지 않은가. 밥값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조여든다.
오늘 발표된 계획에 따르면 내가 담당한 5학년의 경우 4월 16일 자로 온라인 개학이 예정되어 있다. 나는 주인을 만나지 못한 교과서의 내용과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잘 녹여 온라인 수업을 하고 평가까지 마쳐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일상으로 삶을 내몰고 있다. 나는 요즘 휴대전화 거치대를 구입하고, 화상강의 앱 사용법을 익힌다. 동학년 선생님들이 모인 채팅창에서는 온라인 개학과 수업 준비로 말들이 끝없이 쌓인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속 의사 리유는 말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인정해야 할 것이면 명백하게 인정해, 드디어 쓸데없는 두려움의 그림자를 쫓아 버린 다음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페스트가 멎을 것이다."
불평, 불만으로 24시간을 날려 보내기에는 요즘 일상 변화의 농도가 짙다. 걸음이 느린 편인 학교사회도 변화하지 않고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학교는 언제나 지켜야 할 것들과 내보내야 할 것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곳이기에 속도가 더딘 게 당연하다. 천천히 다가올 학교의 뉴노멀을 문자로 붙잡아두려 한다. 기록함으로써 재난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