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학교의 맛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20.04.03

by 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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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부터 새로운 앱을 깔아 쓰고 있다. 클래스팅, 하이클래스, ZOOM. 새롭게 들락거린 사이트도 늘었다. e학습터, EBS 온라인 클래스, 구글 클래스룸, 마이크로 소프트 팀즈, 학교가자.com, 온라인배움교실.com.


모두 온라인 개학에 대비한 원격 수업 플랫폼과 지원 사이트이다. 기존에 쓰고 있던 클래스팅이나 밴드 같은 앱을 더하면 열 가지가 넘는다. 학교 선생님들이 모두 여기에 매달려 있다. 담당 학년과 교과(전담 교사)에 적합한 플랫폼을 찾고 실습을 한다. 올해 우리 5학년 선생님들은 SNS 플랫폼으로 네이버 밴드를, 주력 콘텐츠로 EBS를, 보충 콘텐츠로 자체 제작 영상 및 자료를 선택했다.


큰 틀은 협의가 되었는데 실천이 문제다. 언제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학교 교실에는 와이파이와 웹캠이 없다. 그래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로 바꾸고 웹캠을 사비로 산다. 시중 웹캠 가격이 일제히 폭등했다. 교사들이 사들인 것이다. 한편에서는 화면 사이즈가 큰 아이패드나 갤럭시 패드가 잘 팔린다. 학부모와 학생이 사들인 것이다. 시범학교나 예산이 넉넉한 시골 학교는 사정이 그나마 나은데, 당장 온라인 개학을 코 앞에 둔 일반 학교에서는 답이 없다. 일단 교사가 손품 팔고, 발품 판다.


학교 PC는 동영상 제작에 적합하지 않다. 직접 찍은 영상을 편집하고 탑재하는데 하세월이다. 이럴 때는 역시 지난 월급날 지른 최신식 장비를 갖다 쓴다. 하나 둘 헤아려보니 나도 장비가 꽤 된다. 고감도 마이크, 웹캠 달린 노트북 2대, 데스크톱 1대, 아이패드 1대, 타블렛과 펜. 학교에서 하드웨어로 짜증 날 때마다 사모은 건데 12년 차가 되니 어느새 한가득이다.


어쩐지 성과급이 예년보다 일찍 지급되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소비를 진작 시키기 위한 방안이라고 했다. 온라인 수업을 위해 비싼 요금제로 바꾸고, 고성능 개인 장비를 사들이는 걸 보니 내수활성화라는 목표는 확실히 달성했다. 목돈은 이렇게 쓰라는 건가, 나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소비할 마음이 있지만 이런 식인 줄은 몰랐다. 비슷한 얘기를 동료에게 건네자 피식 웃는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교육부가 언제는 준비해주고 시켰나? 월급 줬으니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맡겨 버리는 거지. 거봐, 이번에도 잘 되고 있잖아."


농담이 아니라서 웃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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