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나눠 주는 게 일이 될 줄이야. 교실이었으면 애들 한 줄로 세워 가져가기만 하면 되는데, 이걸 일일이 나눠주려니 품이 든다. 아이가 가져가야 할 교과서는 총 16권. 방역을 위해 외부인이 학교 건물에 들어올 수는 없다. 하는 수 없이 교과서를 하나하나 포장하고 짐수레에 실어 교문 앞 천막까지 날라야 한다. 교과서 수량을 세고 있는데 똑똑 누가 교실 뒷문을 두드렸다. 급식실 조리사 분이셨다.
"앞문 뒷문 소독 좀 할게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요즘 학생이 나오지 않아 급식 업무를 할 수 없으니 대체 업무 중이셨다. 고개 숙여 인사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책을 수레에 담으려 1층 내려가는 길에 청소 여사님을 만났다. 걸레로 복도를 닦고 계셨다. 세면대에는 소독용 분무기와 걸레가 놓여있었다. 수전이 전등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책 다 옮기시려면 무거우시겠어요."
"학년 선생님들 다 같이 하니까 금방 할 수 있습니다."
수레를 끌고 교문으로 갔다. 처음 보는 천막이 서 있었다. 천막 아래에는 긴 책상 두 개와 의자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스포츠 강사님과 운동부 코치님들이 설치해 주신 작품이었다. 비가 조금씩 내렸고 바람이 세찼다. 빗방울은 천막이 막아주었고, 기둥마다 걸린 두 개의 모래자루가 바람에 날리는 천막을 붙잡았다. 그러는 사이 학부모님들이 걸어서 또는 차를 타고 교과서를 받아가셨다. 택배차와 점심 배달 오토바이가 중간중간 교문을 넘나들었고, 쓰레기 수거 트럭이 숨죽이며 지나갔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날도 추운데 고생 많으시네요."
나는 자주 인사를 받았다. 문자로 미리 안내드리면 안내를 해 줘서 고맙다고, 자동차 창문으로 교과서를 건네드리면 챙겨줘서 고맙다고 말씀을 들었다. 교육자 불신이니 교사 권위 추락이니 해도 결국 나는 담임이고, 학부모님들은 아이를 맡긴 입장에서 예를 갖춰 주신다. 그러나 내가 받는 감사 인사는 이름 모를 수많은 분들의 그림자 노동에 기대고 있다.
교실에서 나온 쓰레기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복도에 찍힌 내 발자국과 문 손잡이에 달라붙은 세균은 누군가의 손길과 정성으로 지워진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분통해할 것이 아니라, 물밑에서 자신의 몫을 다 하고 소리 없이 얼굴 없이 사라지는 이들을 기억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