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3
아는 선생님 한 분은 휴대전화 번호가 두 개다. 업무용과 개인용. 가족과 친구에게는 개인 번호를,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업무 번호를 알려 준다.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얼굴은 물론 주소, 프로필 사진 같은 일체의 개인 정보도 공개하길 꺼리신다. 아가씨 시절 시골 관사에 있으면 누가 창문을 퉁퉁 치고 수시로 문 앞을 서성였다고 했다. 자물쇠를 두 개, 세 개 채워놓고 지내다가 날이 밝아 학교에 아이들 소리가 들리면 현관을 나선 기억에 지금도 가슴 졸인다.
여자 선배님의 회고는 야만의 시대를 증언한다. 밑도 끝도 없는 음담패설, 신규 여교사 교장 교감 옆에 붙여 술 따르기, 노래방에서 블루스 추기. 세대가 바뀌어 교직 사회 물갈이가 되었다지만 그리 먼 과거는 아니다. 2011년에 발령받은 아내도 초년 차에 모 관리자가 손등에 한 뽀뽀에 당했다. 아내만 그런 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다른 몇 명도 똑같은 수치를 겪었다. 관행대로 유야무야 넘어갔다. 다음 날, 사과 대신 변명을 들었다. 술 김에 딸 같아서 그런 거니까, 뭐.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나는 군대에서 갓 전역한 4년 차 선생이었는데 제대로 항의도 못하고 벽만 주먹으로 때렸다. 해당 교육청에 민원 제기도 없이 지나갔다. 주먹하고 가슴만 아팠다. 가까운 동료에게 말해봤지만 큰일 아니니 좋게 좋게 넘어가라고 했다. 나는 그놈의 좋게 좋게가 빌어먹을 주술이라고 저주하면서 좋게좋게 화를 삭였다. 교직 좁은데 별 거 아닌 걸로 지랄하지 말자고 여러 번 스스로에게 말했던 것 같다.
2011년의 더러운 기억이 불쑥 솟아 오른 건 온라인 개학 회의 도중이었다. 담임 소개나 원격 수업을 제작할 때 담임 얼굴이 나오는 사진이나 영상을 넣을지 말지 논의했는데 여선생님들께서 거부 의사를 밝히셨다. 대신 별도의 학급 안내 영상을 제작한다는 대안이 나왔다. 그 순간 역겨운 과거가 떠올랐다. 나는 얼굴을 올리지 않으셔도 된다고 기꺼이 동의했다. 여성의 신체와 개인정보는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에서 범죄의 대상이 된다. 과장이라 할 수 없는 시대의 진실이다.
나는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모른다. 그나마 교직사회는 여성이 많은 집단이기에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다. 얼마 되지 않는 이야기에도 나는 자주 소름이 돋는다. 여교사가 듀얼 넘버를 쓰는 백 가지 이유 중 서너 가지만 겨우 짐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