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학교의 맛

스마트폰 천사

20.04.21

by 이준수


독서와 글쓰기가 취미다. 자기소개 자리에서 딱히 할 말 없어서 얼버무리는 취미가 아니라 진지한 행복의 원천으로서 책을 아낀다. 나는 연필을 쥐고 책을 읽는다. 눈으로만 보면 글자가 잘 안 들어온다. 까만색으로 밑줄과 빗금을 쳐야 내 책 같다. 감정이 격해지면 여백에다 떠오르는 감상을 갈겨 적는다. 그래서 내게 책은 사보는 물건이다. 혹여 빌린 책은 문장 아래 자를 대고 읽거나 손가락으로 더듬어 글을 삼킨다.


내 안에는 성욕과 식욕처럼 읽고 쓰는 욕구가 있다. 해소하지 않으면 삶의 리듬이 깨지고, 생활이 지속되지 않는다. 까다로운 습성이다. 나의 취향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반영된다. 은연중에 책을 영화나 게임보다 상위 가치의 매체로 떠받든다. 이 말에 동의하는 학생은 거의 없지만, 선생님의 독서 잔소리는 클리셰나 다름없기에 침묵을 지킨다. 애서가에게 교사 직업은 취미를 정당화하는 구실이 된다. 스마트폰에 미쳐 사는 아이를 꾸중하고, 수업 시간에 몰래 하다가 걸리면 면박주고 그랬다. 언제나 책이 우선이라고, 컴퓨터나 휴대전화는 어차피 노출될 테니 천천히 배우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온라인 개학 이후 나는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잘 다루는 아이가 예뻐 보인다. UCC도 척척 만들고, 1:1 대화 신청도 걸 줄 알고, 사진 편집에 능숙하다. 심지어 어려움에 빠진 친구를 먼저 나서서 도와주기도 한다. 온라인으로 과제를 확인하고, 피드백하는 일은 때때로 지친다. 오프라인에서는 자연스럽게 흘러갈 일상이 출결과 수업 독려, 과제 점검 등으로 쪼개져 피로를 몇 배로 늘린다. 그러니 스마트폰 좀비가 스마트폰 천사로 보일 수밖에.


아내와 수다를 떤다. 세상 별 일 다 있어. 학교가 바뀌니 예쁜 애들도 바뀌네. 맞아 맞아, 사는 게 참 신기하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요, 개똥도 약에 쓰일 때가 있네. 한참을 키득거리다가 책 읽으러 서재에 간다. 아이들 눈에는 내가 책 좀비로 보이겠지? 시대에 뒤떨어지는. 스마트폰 천사들아, 내가 모르는 세계를 너희는 알겠지? 마음껏 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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