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학교의 맛

건물 안과 밖의 세계

20.04.27

by 이준수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 급식실 공사가 한창이다. 대형 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수시로 지나다닌다. 건물 1층에 유치원이 있는데, 트럭 바퀴가 유치원생 키 만하다.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건물 전체가 흔들린다. 진동이 잠잠해지나 싶더니 천장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방수 공사를 한다더니 드릴이 쉴 새 없이 천장을 때렸다. 강약중강약 셈여림이라도 맞추려는지 이따금씩 쿵하고 묵직한 충격파가 내려앉았다. 방수액이 든 육중한 깡통이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처음에는 천장을 힐끗거릴 정도였으나, 한 시간이 넘어가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급기야 어른 허리보다 두꺼운 파이프가 건물 위를 지나다니는 광경을 보고 나서는 천장 한 번, 모니터 한 번 눈동자가 굴러다녔다. 급식실 짓다가 초상집 만드는 거 아니야?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학생들 수업 피드백을 하다가도 불쑥 짜증이 치밀고, 집중력이 흩어졌다. 나 혼자 유난 떠나 싶었지만 양 옆 반 선생님들께서는 두통으로 점심도 잘 못 드시고, 3시 이후 조퇴를 내셨다. 학년 팀장님이 행정실에 공사 소음, 진동 건으로 자제를 부탁하셨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 이상 자리를 지키기 힘들었다. 다짜고짜 복도로 나갔다.


복도로 나간 들 뾰족한 수는 없었다. 기계음이 끊임없이 뇌를 갉아먹었다. 복도 창문 뒤편으로 급식실 공사 부지가 보였다. 며칠 사이 콘크리트 바닥이 굳었고, 철근이 군인처럼 서있었다. 그 위로 크레인 줄에 매달린 건축자재가 덜렁거렸다. 통로가 좁아 트럭은 다닐 수 없고, 사람 힘으로는 부족하니 크레인의 힘을 빌리는 듯했다. 한 아저씨가 덩어리 아래쪽에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휴대폰이나 무전기로 무슨 신호를 보냈다. 나는 크레인 줄이 끊어지거나, 조작 미숙으로 건축 자재가 아저씨를 덮칠까 봐 심장이 뛰었다. 기계와 철골 앞에서 인간의 신체는 민들레 홀씨였다.


먼지바람이 들이쳤다. 창을 닫아 4월의 황사를 막았다. 마스크로 입만 막은 아저씨가 보였다. 코로나19 이후 인력 사무소에 늘어선 긴 줄을 안다. 일감이 없으니 몇 안 되는 자리에도 희망을 걸어 줄을 서는 것이다. 하루 벌어 입에 풀칠하는 사람은 치료비가 무료인 코로나19보다 실직이 더 무섭다. 어쩌면 공사장의 아저씨도 불경기에 일이라도 있는 게 어디냐며 기꺼이 위험한 작업을 감수했을 수 있다. 사실 여부를 알 길 없었지만, 방금 전까지 몸을 잠식했던 두통과 분노가 가라앉았다.


교실로 돌아와 온라인 학급에 접속했다. 척추를 받쳐주는 기능성 의자가 내 허리를 곧게 펴주었다. 책상 앞 공기청정기는 깨끗한 공기를 코로 보냈다. 트럭이 지나가는 바람에 화면 속 글자가 춤을 추었으나 아까보다 덜 미웠다. 옥상 시멘트 긁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려 퍼졌다. 내일 행정실에 다시 한번 문의를 해야겠다는 결심과 동시에 기계로 옥상 바닥을 긁는 남자를 생각했다. 아래층에 근무하는 사람은 괴로우나, 작업의 결정권이 없는 인부는 노동을 멈출 수 없다. 바닥 긁기에는 그의 생활이 달려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상하게도 전보다 스트레스가 덜했다.


방수 작업은 하루 이틀로 끝날 일이 아니다. 작업 방식과 시간을 두고 협의가 필요할 듯하다. 공사 기간이 빠듯한 마당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잘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봄 먼지 마시며 철근 더미를 헤집는 남자를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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