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29
학교는 물의 법칙을 따른다. 위에서 아래로, 교육부에서 공문을 쏘면 도교육청이 토스하고 지역 교육청이 스파이크 때려 학교에 박는다. 모든 게 공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공문은 온갖 자잘한 규제와 지침을 담고 있다. 늘 하던 대로 하려는 요식 행위적 성격이 강하고, 교육부 단계에서는 있지도 않았던 사족이 하위 단계에서 달라붙기도 한다.
학교에 공문이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담당 업무와 관련된 것만 보려 해도 이것을 내가 왜 해야만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불쑥 솟아오를 때가 있다. 정당한 일이면 야근이라도 하겠으나, '긴급'이라는 명목을 붙여 시시콜콜한 데이터 수집을 몇 시간 안에 요구하거나 내 권한과 직무 밖의 일을 하라 하면 브라우저 창을 닫고 싶어 진다. 지역청에 전화해서 따지기도 힘들다. 법령을 찾고 원칙을 들이밀어 보지만 언제나 대답은 '학교장 재량으로 처리하시오.'다.
강원도 교육계는 발바닥 만해서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 굳이 원칙을 따지고 드는 인간은 교감도, 장학사도 싫어한다. 미움은 견딜 만 하지만, 해당 사안과 관계없는 온갖 오해와 억측, 따가운 시선이 몹시 피곤하여 타협하고 만다. 행정기관이 사랑하는 조화롭고 질서 정연한 공직문화란 소란 피우지 않고,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이다. 영혼 없이 양식만 대충 채워 보내면 대개 무탈하다.
위에서 하라는 대로만 지내다가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재미난 경험을 하고 있다. 만일 교사가 기입한 정보에 오류가 있으면 붉은색 글씨로 표시가 된다. 예를 들어 5학년 2반 1교시에 이준수라는 교사가 국어 수업을 했는데, 같은 시각 5학년 3반 1교시가 이준수 교사의 국어로 되어 있으면 안 된다. 한 교사가 동시에 두 반 수업을 해버린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온라인 수업 이후 학년 전체가 동일한 수업 시간표를 사용하고 있다. 학년 선생님들이 과목을 나누어 수업 영상을 제작해 올리면 학년 전체가 공유한다. 나는 과학과 실과를 맡았다. 내 영상은 복사가 가능하므로 수요일 5교시에 모든 반에서 수업을 동시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현 NEIS 시스템에 학년 공통 시간표를 적용하면 온통 빨간색 천지다. 교사와 과목이 겹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개학을 전제로 만든 시스템은 온라인 수업에 적합하지 않다고 도교육청에 문의를 했다. 대답은 "붉은색 상태로 놔두라. 하고 계시는 대로 하시라."였다.
폭포수만 맞다가, 분수를 쏘아 올리니 중력장이 뒤집힌 세상 같다. 현장에서 만들어 행정 기관을 향해 거꾸로 올릴 수도 있구나. 주체적으로 움직인다는 자아 감각이 새롭다. 내 힘으로 어떤 것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효능감이 좋다. 이래서 권력에 미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