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현장 수업이 하고 싶었다. 온라인 수업 준비가 귀찮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영상을 제작하거나 편집하는 일은 익숙해지니 힘들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수업을 이해하고 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파악하는데 애를 먹는다.
실제 교실에서는 오감이 모두 열려있다. 선생님께 물어볼까 말까 망설이는 걸음걸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다가온다. 나는 어깨를 두드리거나, 하이파이브를 하고, 시선을 맞추며 40분을 채운다. 줄탁동시라 하지 않나, 학생과 호흡을 맞추며 하는 수업은 깊은 만족감과 높은 학습목표 달성률로 이어진다.
수업하는 맛이라고 할까, 좋은 수업을 하면 보람이 상담하다.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내적 충만함이 있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아이들의 실체가 유령처럼 희미해져,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물론 아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흔적을 남긴다. 과제 댓글을 달고, 사진을 보내고, 동영상을 찍는다. 그러나 댓글은 오프라인 수업에서 보여주는 표현력과 열정을 압축해서 나타내지 못한다.
12살의 엄지 타이핑은 서툴고, 모를 때 슬쩍 물어볼 친구도 옆에 없다. 그 결과 의견은 단조로워지고, 먼저 제출한 친구의 생각을 베끼고픈 무임승차 심리가 고개를 든다. 비밀 댓글로 과제 제출 방식을 전환해도 동료와 상호작용을 거치지 않은 답변의 수준은 실망스럽다. 학생 잘못이 아니라 온라인 수업의 한계다.
등교 개학하면 수업하는 맛을 되찾을 수 있을까. 맛은커녕 등하교나 제대로 시키면 다행이다. 1m씩 떨어져 앉지 못하는 교실의 협소함은 둘째 치고, 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도 머리를 맞댈 수도 없는 학교에서 어떻게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반마다 와이파이 공유기를 설치했으니 이어폰 끼고 단체로 모바일 강의라도 들을까. 창문을 연 채 60개 교실에서 에어컨 바람을 뽑으면 전기세가 얼마 나올까 궁금해할 짬도 없이, 아이들 입을 다물게 하고 땀이 닿지 않는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감시와 처벌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매뉴얼을 준수할 수 있을 테니까.
마법사만이 가능한 방역 미션을 극악한 확률로 지킨다고 가정해보자. 오랜만에 학교에 나와 고문당하는 아이들은 무슨 죄인가. 잠옷 입고 거실에서 온라인 수업들을 때가 좋았다고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나 집에 죽치고 있을 수 없는 사정도 알고, 신규 확진자를 어느 정도 감수하며 등교 개학을 추진해야 하는 당국의 입장도 있겠지만 6월 이후의 그림이 예쁘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수고스럽겠지만 차라리 홀짝제로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면 낫겠다. 적어도 물리적 공간은 확보될 테니까. 학생 수가 절반으로 줄어도 하루 네 차례 이상 체온 재고, 간격 유지하고, 상호교류 막는데 드는 에너지가 상당하겠지만, 등교 개학을 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그나저나 고요 속에 띄엄띄엄 급식 줄 선 학생의 모습은 장관이겠다. 점과 점으로 이어진 인간의 끈, 일상성을 회복하기 위한 관료제 행정의 분투. 예술은 기존의 것을 전복하며 탄생하는 법이니 확실히 예술적 가치는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교육적이라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 여기는 미술관이 아니라 학교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