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사회 1단원은 국토와 우리 생활을 다룬다. 한국의 산지, 하천 등을 알아보려면 지도 볼 일이 잦아 <사회과 부도>를 보조 교재로 쓴다. 과제 정답 확인 차 사회과 부도를 펼쳤다가 한 시간을 날려 먹고 말았다. 10쪽과 11쪽 우리나라 중부 지방에 머물러야 했을 내 눈은 어느새 36쪽 유럽에 박혀있었다. 본능처럼 이끌려 지겹도록 본 땅덩어리. 나는 왜 유럽에 매료되는 걸까.
얼마 전, <오베라는 남자>를 읽어서 스웨덴이 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어릴 적, <먼 나라 이웃 나라>를 세 번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신혼여행을 이탈리아로 다녀와서 그렇거나, 터키에서 한 달짜리 배낭여행을 했는데 유럽의 신기루만 쫓은 기분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혹은 BBC에서 한국을 모범 방역 국으로 띄워주니 조중동보다 정감이 가고, 아예 민족정론지로 삼고 싶은 사대주의 근성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외부의 승인과 평가, 특히 유럽이라는 권위 있는 집단에서 내린 판단에 마음을 빼앗기는 중진국 마인드를 지니고 있다.
내게 유럽은 신화적으로 존재한다. 민주주의의 모태, 일과 삶의 균형, 자유와 평등의 조화, 로마 제국의 영광. 유럽은 가슴 뛰는 가치를 만들고 실현하는 곳이었다. 아내와 내가 푸껫의 풀빌라를 포기하고 이탈리아의 쓰리 스타 숙소를 전전한 건 신화의 땅을 두 발로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의 보고라는 필터를 끼고 바라본 바티칸 시티와 베네치아 광장은 가슴 벅차게 아름다웠다.
냄새나고 어수선한 지하철과 위협적인 신호를 보내는 집시, 부랑자들은 일시적인 오류라고 무시하고 싶을 만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신용카드 복제 사기를 당해 1000 유로 짜리 명세서가 자꾸 날아왔지만 잊지 못할 해프닝이라며 이탈리아를 옹호했다. 또 인종차별은 모든 문화에 존재하니까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이 꼴을 당하고도 다음 여행지로 스페인을 꼽았으니 얼마나 대단한 유럽 꼴통인가. 아이가 생긴 이후 근거리 여행을 지향하여 괌, 도쿄, 방콕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가슴속에는 바르셀로나에서 하루 다섯 끼를 먹겠다는 꿈이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를 겪으며 유럽 콩깍지에 균열이 가고 있다. 우리가 지역 봉쇄를 하지 않고, 총선을 치르며, 롯데가 13년 만에 개막 3연전을 스윕하는 동안 스페인과 이탈리아, 영국은 사망률 10%를 돌파했다. 사재기로 마트 선반이 비었고, 동양인을 향한 차별과 폭행이 벌어졌고, 강제 이동금지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물리적 거리두기를 실천하지 않았다.
이제 유럽을 선망의 무대에서 내려주어야 할 것 같다. 스페인에서 감바스와 빠에야를 먹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지만,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는 시선은 거두려 한다. 루돌프 썰매 타고 전 세계를 날아다니던 나의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가 늙고 병들어 굴뚝에 끼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