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일주일에 하루 재택근무를 한다. 오전 여덟 시 삼십 분, 둘째를 어린이집 차량에 태워 보내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다즐링 홍차 한 잔에 아침 설거지 마치니 아홉 시다. 1교시 수업 올린 후 질문 몇 개 답해주고, 과제 확인하다가 어느새 40분이 끝난다.
쉬는 시간 10분 짬을 낸다. 침구를 개키고, 세탁기를 돌린다. 베란다 창으로 새로 돋아난 초록이 넘실거린다. 하늘과 두타산그리고 전천강. 사람들이 강변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밝는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아주머니, 가볍게 뛰는 남학생이 봄날 안에 있다. 나는 스피커 볼륨을 키운다.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앨범을 약간 과하다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크게 듣는다. 황홀한 2교시가 지나간다.
20분이 주어지는 중간 쉬는 시간, 몸이 찌뿌둥하여 분리수거를 한다. 대한 통운 기사님이 트럭에서 택배 상자를 내리고, 경비 아저씨가 재활용품 수거장에 떨어진 비닐과 종이 조각을 줍고 있다. 깨진 소주병도 보인다. 경비 아저씨는 직함과 달리 분리수거와 무단 투기 폐기물 단속에 진을 뺀다. 주차 시비도 해결한다. 최근 강북에서 모 경비원 한 분이 주민 갑질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중주차 분쟁이 죽음의 경로에 끼어있었다. 경비원은 전염병이 칼끝을 내밀어도 재택근무가 불가하다. 그 자리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고, 불경기에 임시 계약직을 희망하는 노인 대기명단은 길다.
13층까지 계단을 타고 오른다. 동네 마트 전단지가 층계참 바닥에 뒹군다. 전단지 알바생과 몇 번 마주친 적 있다. 후드 뒤집어 쓰고 선글라스를 낀 그녀는 경보 선수 그림자처럼 곁을 스쳐갔다. 한 장에 얼마를 받을까. 시급일까 전단지 수량별 금액일까 헤아려 보다 어느새 집이다. 음악은 카즈미 타테이시 트리오가 연주하는 시벨리우스 핀란디아. 국어 과제를 뒤늦게 등록하는 학생의 새 댓글 알림이 불협화음으로 파고든다.
어느 새 점심시간이다. 긴급재난지원금도 받았겠다. 얼마 전 리모델링 한 동화속베이커리로 간다. 햄버거와 이탈리안 고로케를 고른다. 가족 운영 가게인지 점원분들 얼굴이 묘하게 닮았다. 인건비를 줄이려면 주인네 가족이 돌아가며 알바 자리를 메워야 한다. 보편화된 자기 착취다. 돌아오는 길 두피가 가렵다. 긁으면 안 된다고 다짐하며 검지 손톱을 손바닥으로 감싸 쥔다. 문득 닷새 전에 시킨 헤드앤숄더 클리니컬 스트렝스 샴푸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Torrance, CA 90503 2720 Monterey St. Suite 405
배송지가 미국이라 출발은 했다는데 현재 어디인지 뜨지 않는다. Torrance, 캘리포니아 남부 도시라 한다. 400ml짜리 샴푸 두 개가 태평양을 가로질러 내 손에 오기까지 불과 열흘도 걸리지 않는다. 글로벌 물류 시스템은 텔레포트 마법만큼 정교하고, 정확하며, 신속하다. 마법사가 마나를 소모하여 마법을 부리는 반면 물류 시스템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에너지를 빌린다. 지난달 29일 이천 물류창고에서 마법 같은 일을 하던 사람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물류 창고가 불타도 택배는 계속 된다. 다른 창고의 누군가가 내 샴푸를 컨테이너에서 분류하여 강원도 동해시까지 보낼 것이다. 사람은 죽어도 자본과 물자의 이동은 멈출 수 없다. 설국열차는 무한 트랙을 돈다.
3시, 수업의 끝이다. 따봉 기분 표시로 아이들 하교 인사에 답한다. 누락된 과제를 챙기고, 출석을 확인한다. 뻐근하니 오후 커피가 당긴다. 서호 책방에서 모카 포트로 끓인 투 샷 에스프레소에 더운물을 타 마신다. 머그 컵을 들고 보니 김훈 에디션 굿즈다. <라면을 끓이며> 산문집에 나오는 문장이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