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학교의 맛

군인이 시민을 죽이지 않는 세상

20.05.18

by 이준수


교육청 출장 가는 길, 마중버스에서 내리는 군인을 본다. 디지털 군복 입은 상병이다. 몇 호봉인지 알 수 없으나 상병 말년이면 올해, 물상병이면 내년 초에 전역할 것이다. 어느 쪽이 되었건 작대기 세 개가 주는 안도감은 크다. 상병은 군생활의 절반이 꺾였다는 증거다. 더 이상 생활관 걸레를 빨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내 차는 빨간 신호에 멈춰 서 있다. 와이퍼가 빗물을 쉴 새 없이 닦는다. 흘러내리는 빗물 너머로 이름 모를 군인이 흐려졌다가 밝아진다. 상병은 도로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폰을 만지작 거린다. 현실 세계에서 주눅 든 젊은이는 가상 세계에 접속해야만 겨우 자신을 감출 수 있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날, 세상에 혼자 남은 생존자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는 청년은 10년 전 나이기도 했다.


2010년 8월, 여름방학이었다. 머리를 박박 밀고, 옷을 벗고, 지문을 찍은 후 군인이 되었다. 그것도 춘천에서. 나는 춘천에서 대학을 나왔고, 호수를 사랑했지만 아름다운 도시의 귀퉁이에는 102 보충대도 있었다. 입소식에서 저마다 다른 외형을 가지고 있던 102 보충대 동기들은 금세 비슷해졌다. 징집 병사는 전쟁 기계에서 찍어내는 부품이었다.


나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던 리복 농구화와 폴로셔츠는 집으로 보내졌다. 택배 상자가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우리(군인에게 개인은 없다.)는 차가운 복도에서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었다. 유리 조각 같은 일상은 국방 망치에 맞아 부서졌다. 기존의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나를 압박해 들어왔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더러운 부산물이라고 스스로를 속여야만 했다.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쪽 짜리 인간으로 전락해야만 한다는 진실은 외면했다. 그걸 인정해 버리면 견딜 수 없이 비참해질 것 같았다.


나는 교사 출신이라고 소총수에서 작전병으로 보직을 바꿔, 연대 상황실에서 근무했다. 온전한 인간은 군대의 부속품으로 쓰기에 지나치게 존귀하므로 군인화 과정에는 인격 모독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었다. 간부들 커피 타기, 부패 눈감아주기, 지휘관 폭언과 짜증 뒤치다꺼리가 주임무였다. 시도 때도 없이 모멸감이 치밀었지만, 섣불리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다. 내게는 사회에 돌아갈 자리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 또래의 간부들 앞에서 무너진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절대로 부패한 군대에 지고 싶지 않았다. 오늘 만난 그 상병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군인 신분이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은. 간부들이 주적인.


40년 전 오늘, 작전명 '화려한 휴가'를 수행하던 군인들은 광주 시민을 때리고, 죽였다. 총을 쏘고, 칼로 찔렀다. 대통령 자리에 눈이 먼 독재자와 수하들은 민간 세계를 파괴했다.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군대를 신뢰하지 않는다. 군인은 권력이 얽히면 언제든지 민간인을 해할 수 있다. 촛불혁명 당시 계엄령 검토 문건이 나돌았음을 잊지 말자. 군인이 시민을 죽이지 않는 현재의 세상을 지키고 싶다. 민주주의는 대의명분으로나 사적인 감정으로나 내가 버릴 수 없는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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