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안 보이게 꼼꼼히 닦아. 열심히 안 하는 친구 혼 나."
장학사가 학교에 방문하기 전날, 국민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열 맞춰 기름 걸레질을 했다. 선생님이 왁스를 주걱으로 떠서 마룻바닥에 흩뿌리면 얼룩 지우기가 목표인 로봇청소기처럼 달려 나갔다. 나무 가시가 손가락에 박혀 들어오고, 양말에서는 기름 전 내가 났다. 담임 선생님은 초조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장학사라는 분이 높은 사람이며, 그는 학교가 아닌 교육청에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손 보이지? 구석까지 빨리빨리 밀어. 뺑끼 치면 죽는다."
십수 년이 흘러 군부대에 군단 참모장이 방문하기 전날, 일병이었던 나는 물통과 빗자루를 나란히 들고 생활관 바닥을 밀었다. 선임이 치약을 짜서 콘크리트 바닥에 뿌리면 어금니 닦듯 박박 문질렀다. 더러운 거품이 발가락에 올라타고, 땀내와 뒤섞인 민트향이 코를 파고 들었다. 중대장은 초조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원스타 참모장이 연대장의 진급을 위해 중요한 사람이며, 그는 일선 부대가 아닌 군단 사령부에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특정 기관의 위상을 알고 싶거든, 타 기관과 접촉할 때 발생되는 언어를 살펴보면 된다. 예를 들어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경우 교육부 이하 도교육청, 시교육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학교는 이들 기관과 공문의 형태로 의사소통을 한다. 아래는 부산교육청이 지난 19일 일선 학교에 보낸 공문의 일부다.
"등교 수업 이후 학교 출입자에 대해 발열검사를 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실시하여 학교 내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해당 학교를 엄중 문책할 예정이므로 발열검사에 철저를 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서릿발 같은 협박에 심장마저 얼어붙는 듯하다. 학생과 나 그리고 가족의 건강을 걸고 방역과 교육을 동시에 하는 교사에게 채찍을 가하는 공문이다. 문의사항 연락처도 남겨 두었는데 그곳은 무려 '등교 수업 학교지원센터'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현장은 1도 관심 없지만, 어차피 승진해서 교장으로 나가는 게 목표인 사람들에게도 명분은 필요하니 기관명을 감히 지원센터라고 붙였다. 혹시 지원이 지시와 원망의 줄임말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아무리 학교 사람들이 말단에서 잡일 하는 하급자로 보여도 그렇지 엄중 문책이라는 주인의 언어를 대놓고 쓰는 건 너무 노골적이지 않는가.
교육청에 연수가면 교육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교사야 말로 교육 주체라며 추켜세워 준다. 배운대로 교육 주체로서의 권리를 십분 발휘하여 선생님들이 항의 전화 몇 통을 넣는다. 그럼 당당하게 해명하고 사과할 것이지, 자리 비우고, 옆에 사람 대신 전화 받게 한다. 나는 이것이 부끄러움의 발로인지, 성가심으로 인한 회피인지 구분할 수 없다.
사태가 커질 것 같으니 부산교육청은 긴급 수습에 돌입한다. 학교지원센터가 늘 주장했던 대로 현장이 가장 중요하다면 사과를 공문으로 정식 절차 받아 하는 게 맞지 않는가. 그런데 공문은 논란 문구만 쏙 빼버리고 재전송, 사과는 메일로 그것도 교장 앞으로만 보낸다. 차마 교사 아랫것들에게 같은 선상에서 직접 말을 전할 수 없으니 네가 대신 무마 잘 해라. 이런 뉘앙스.
학교의 위상이 이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