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학교의 맛

집단면역을 아주 천천히 하는 거예요

20.05.20

by 이준수


회의가 길게 이어진다. 보통 회의 안건은 많아 봐야 네다섯인데, 오늘은 비어있는 칸만 13개다. 심지어 업무 담당자도 없어서 모두가 기초부터 쌓아야 한다. 우선 등교를 어떻게 할 건지부터. 전교생 677명인 학교에서 시차 등교는 실질적으로 의미 없으니 패스. 전면 등교냐, 격일이냐, 격주냐를 두고 갑론을박한다.


"격일은 힘들어요. 그럼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 자료를 두 번씩 만들어야 되잖아요."

"격주로 1 3 5 학년, 2 4 6 학년 하면 어때요? 급식 부담도 덜하고요."


격주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듯하다가도 슬며시 고개 드는 걱정과 반론.


"격주든, 격일이든 거리를 두면서 공간을 확보하는 게 관건인데 같은 시는 쉬간에 화장실 이용이 몰리 면요?"

"복도 공유하는 반끼리 5분씩 나눠서 이용하게 할까요?"

"5분씩 나눠도 한 명씩 들어가면서 거리 유지를 어떻게 하나요?"


잠시 침묵. 마스크와 소독액을 주 무기로 싸우는 방역책임관들은 착잡한 마음에 입을 떼지 못한다. 기분을 전환하고자 급식으로 화제를 돌린다. 밥은 원초적 욕구를 자극해 슬그머니 힘나게 만들지 않던가.


"급식실 공사 관계로 체육관에서 간편식을 먹는다는 말씀이시죠?"

"3동에서 체육관까지 가려면 적어도 5분 이상은 걸릴 텐데요."

"앞뒤 간격 1m 유지해야 하니 더 걸릴 수도 있고요. 먹고 나서도 고민이에요. 교실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면서요. 먼저 밥 먹은 애들은 누가 관리해요?"

"현재 상황과 규칙을 알려주기는 하겠지만, 그다음에는 기도나 해야죠."


또다시 숨을 죄어오는 끈적끈적한 공기. 하지만 고개를 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다. 발상을 바꾸어 보자. 생활 방역은 확진자 '0'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의료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신규 확진을 부담하며 일상을 회복하겠다는 의미다. 달리 보면 백신과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아주 천천히 이루어지는 집단 면역이라 해석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어차피 무증상이나 경로를 알 수 없는 감염은 막을 수 없고, 가볍게 앓다가 지나간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은연 중에 중화항체가 생긴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결국 등교 개학도 생활 방역의 일부이니 신규 확진 제로는 부적절한 가정이다.


"아이들 상호접촉 자제 시키며, 보건 지침을 준수하되 선생님들 건강도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운 좋게 방학까지 확진자 없으면 손뼉 치고 감사할 일이나, 걸리더라도 비난하고 자책하지 맙시다. 매뉴얼대로 최선을 다합시다."


방역의 최전선이라더니 맞네, 말을 하면 할수록 비장하고 살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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