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두 개를 손에 쥔 나는 양치기가 된다. 두 딸을 양떼처럼 앞에 두고 엘레베이터로 몬다. 두 손을 쓸 수 없는 아빠 양치기는 옳지, 잘 한다 추임새 넣으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100미터 전진하는데 5분. 큰 녀석은 양띠다. 인간의 속도로 걷지 않는다. 나란히 가는 닭띠도 마찬가지다.
장바구니 쥔 양손가락이 하얗게 질렸다. 아내의 명을 어겼어야 했다. 그녀가 건네는 식료품 구매 리스트를 곧이 곧대로 담은 나의 실책이다. 차에서 내리면 곧장 집으로 향할 수 있다는 소망을 믿어버렸다. 육아에서 부모의 환상은 경계대상 1호다. 현실이란 벽 앞에 처절하게 무릎 꿇고 싶지 않다면 물건을 조금만 사야했다. 만화 미끼를 던지고픈 유혹이 차오른다.
만화 보자, 이 한 마디면 아이들을 원하는 대로 이끌 수 있지만 유효기간이 60분으로 짧고 하루에 한 번 밖에 쓸 수 없다. 오늘은 목욕과 분리수거와, 빨래와 설거지가 있는 날이다. 함부로 만화 기술을 쓰면 안 된다. 침을 꿀떡 삼킨다. 타박타박 걸음을 내딛다 보니 어느새 1층 계단이다. 9부 능선은 넘은 셈이다.
야옹. 냐아옹.
양떼가 달려간다. 거기에 고양이가 있다. 캣맘 할머니가 간식 주면서 나뭇가지로 고양이랑 논다. 재밌어 보인다. 양들은 고양이로 종족을 바꾼다. 할머니의 신명 나는 손사위에 엉덩이가 들썩인다. 고양이는 양치기 말을 안 듣는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고양이 옆으로 어린이집 원아들이 아장아장 걸어와서 선다. 그들도 곧 종족을 바꾸고 모두 고양이가 된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반갑다고 만지고 인사한다. 에라 모르겠다, 양치기는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 놓는다. 이판사판 만화 미끼를 던진다. 포기하면 편하다.
모레면 초등학교 저학년과 유치원 아이들이 정식으로 등교, 등원한다. 모두 고양이다. 만나면 정답게 안고 어깨동무 할 테다. 나는 고양이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누군가는 고양이들이 얌전히 앉아 있을 거라고, 양치기 지시를 잘 따를 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