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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석 Jan 28. 2019

세월, 그놈 참 잘도 간다


그놈의 세월은 참 잘도 가고 빨리도 간다.

바람에 구름 실려가듯,

강물에 나뭇잎 흘러가듯

먼산 너머로 머흘머흘 구름 넘어가듯,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이

그냥 설렁설렁 스쳐 지나가고 만다.

     

계섬(桂蟾)이라는 늙은 기생은,     

- 청춘은 언제 가고

- 백발은 언제 오는고

- 오고 가는 길을 알았다면 막았을 것을

- 알고도 못 막을 길이니

- 그를 슬퍼하노라.     

라는 처연한 시조를 남겼는데

해가 갈수록 계섬의 심사가 더욱 처량하게 느껴지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나이가 쌓여가고 있다는 방증과 다름없다. 

    

삶에 쫓겨가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외모의 치장과 관심은 손을 놓은 지 이미 오래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어제의 내가 아니다.

하루하루 길고 깊게 늘어가는 낯빤대기 주름선,

속절없이 삐져나오는 허연 터럭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아해들,

비례하여 쳐져만 가는 의욕과 늘어진 내 몸뚱이......  

   

무심히 끄덕끄덕 흘러만가는 시간이라는 녀석은,

질긴 삼나무 끈으로도 묶어 둘 수 없고,

굵디 굵은 동아줄로 매달아 둘 수도 없고,

천년만년 끄떡없을 쇠사슬로도 잡아둘 수도 없다.

영생을 구하려고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진시황도,

유니콘 일각혈(一角血)을 핥아 먹으려던 스코틀랜드의 제왕들도,

봉황의 깃털 뽑아 부귀영화 누리려던 중국의 왕후장상들도,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섭리 속에

수분과 인분과 철분으로 분해되어

끝도 갓도 없이 너른 우주를 떠돌아 댕기는 먼지에 불과할 뿐이다. 

    

클레오파트라 품에 안고 희희낙락하던 시저도,

아들 동치제를 말려 죽이고 영원한 권력을 추구했던 서태후도,

게르만 유전인자로 인류 혈통을 개조하려던 히틀러도,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대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 대왕도,

유라시아를 휩쓸던 칭기즈칸도 

유신헌법이라는 철갑을 둘렀던 박정희도,

지금은 그 흔적만 여기저기 남아 있을 뿐,

이 세상 어디에도 그들의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해지는 옛말에,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좋더라’는 것은,

아무리 지지고 볶는 인연(因緣)의 세상일지라도

별빛 너머의 어둡고 머나먼 절연(切緣)의 세계는 가고 싶지 않다는 것 아니던가!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탐하고 욕망을 좇지만 누구도 天利는 거스르지 못한다.

또한 영생의 길을 찾고자 헤매었던 그 누구도 아직까지 해법을 찾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세의 삶에 대한 희망을 품는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그 위대하신 영웅호걸들의 삶이나

뱃속에서부터 금수저 물고 나온 팔자 좋은 인간이나

사주팔자 기똥차서

돈다발에 폭격당하고 눌려서 숨 켁켁거리는 졸부나

목구멍에 거미 살지 말라고

봄날 토끼 아빠처럼 뛰어 댕겨도

마누라 바가지에 뒤통수 뻐근하고

새끼들한테 등골 빼 먹히는 필부의 삶이나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것은 매양 똑같지 않더냐!  

   

삶은 ‘숨’(息)이다.

즉, 숨을 쉬는 것이 삶인 것이다.

그 숨이 정지하면 모든 생명체의 활동은 끝나버린다.

숨은 폐로 산소를 들여보내고 체내에서 발생한 필요 없는 이산화탄소는 내보낸다.

그 산소들은 다시 페포에 분압 되어 순환하고 폐포의 모세혈관 내 동맥혈은

폐정맥을 통해 심장의 좌심방과 좌심실을 거쳐 신체의 모든 조직세포로 보내진다.

숨이 끊어진다는 것은 곧 혈액순환을 할 수 없다는 것과 같으며

산소와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는 세포는

짧은 시간 내에 죽어버리므로 사람 몸의 기능이 정지되어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삶의 세계에서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존재이며 피하고 싶은 숙명이다.

사고할 수 있고 감정을 가진 인간은 그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와 번민에서 헤맨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수많은 현인들이 그것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들을 세상에 풀어놓았다.

예수,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공자, 맹자, 장자, 아리스 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몽테뉴, 톨스토이

세익스피어, 베토벤, 말러 등 등 등......!

그런데 그 많은 위인들이 삶과 죽음에 대한 진정한 결론을 정의한 사람이 있었을까?

분명한 사실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형이상학적인 구원의 방법을 제시했거나 번민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거나 

스스로의 지혜와 성찰로 깨달음을 얻어 해탈(解脫)의 경지에 오르는 방법론을 제공했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호모사피엔스 이후 태어난 105억 명의 인간들 중 그 어떤 사람도

삶과 죽음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나름의 추론들만 무수하게 쌓여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름의 현답은 있었다.

공자가 제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찾을 수 있다. 

제자는 공자에게 ‘죽음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고, 

공자는 ‘미지생언지사(未知生焉知死)라고 대답하였다. 

즉, 사는 것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뜻이다.

내가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가장 현명한 답변이 아니었을까!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는 인류 고금의 화두이지만 

공자는 무려 2,500년 전에 이미 선각(先覺)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는 

우매한 인간들에게 영원한 고뇌이고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공자님도 모르신다고 하고 석가세존은 스스로 해탈하고 깨달으라고 하시고 

예수님은 무슨 죄가 그리 많다고 하시는지 회개하여 구원을 얻으라고 하시니......!

허기사......!

당장 내일의 일도 알 수 없는 미욱한 가납사니 주제에 무신 언감생심이겠는가!

세상의 섭리는 이미 진작 정해져 있는데

마치 베옷에 물이 스며 올라오듯,

안개가 스멀스멀 산야(山野)를 덮어가듯,

푸른 하늘에 가뭇없이 구름이 흩어져 스러져 가듯,

인지하건, 

무심하건,

순응하건, 

부정하건,

너에게도 나에게도 천명(天命)의 시간은 꾸역꾸역 다가오지 않더냐!

생물로서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녀석 말이다!   

  

왕년에 한가닥 했던 그 무수한 영웅호걸들도,

종교가도, 철학가도, 교육자도, 정치인도,

전부 어데론가 도망갔는지 사라졌는지 꼴도 볼 수가 없다.

오스만의 위대한 술탄 슐레이만 대제도,

헝가리의 영웅 야노스 훈야디도,

몽고제국의 부활을 꿈꾸었던 티무르도,

‘불가능은 없다’라던 의지의 나폴레옹도,

중국 인민의 해방자 마오쩌둥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던 역마살 인생 김 모 씨도,

돈 마니마니 버신 통천 출신 정주영 냥반도,

국가권력도 졸아버리는 삼성공화국 돈병철씨도,

위대하고도 위대하신 세종대왕님도,

국난의 영웅 이순신 장군님도,

그 써 글 놈의 이등박문도,

모두모두 어데로 가버렸는지 당최 꼴도 보이지 않는다.

너도 알고 나도 알듯이 세월이란 놈이 몽땅 잡아가 버린 것이다. 

    

오호!!

그 세월이란 놈이 얼마나 거시기한 놈인지,

힘깨나 쓴다는 헤라클레스도,

산을 뽑아 올린다는 力拔山氣蓋世 항우도,

발칸의 力士 팔키니치도 쨉이 안되고,

아프로 디테, 클레오파트라, 양귀비, 서시, 마릴린 몬로 같은 세기의 미녀들이

홀딱 벗고 떼로 덤벼도 요동이 없다 하더라.

금세기의 천재 스티브 잡스가 애플 폭탄을 퍼부어도,

양키스 돔을 넘겨버린 베이브 루스 빠따로 두들겨 패도,

그것은 한낱 허공 중에 휘두르는 주먹과 다름 아니라고 하더라.


또한,

돈병철네 쐿가루로 목욕을 시켜준다고 꼬시건 말건,

전두환이 특전사 총칼로 협박하건 말건,

김정은이 고사포로 심장을 갈겨대던 말던,

김제동이 온갖 잡설로 허파를 긁어대던 말던,

고집불통 박그네가 배신자라고 겁주던 말던,

메르스균 따발총을 쏴대건 말건,

그 세월이라는 오살놈은 움쩍달 싹은커녕 기척도 없었다고 하더라!

하여간간간에......!

삼황오제와 神들의 제왕이라는 제우스를 비롯한

힘깨나 썼다는 동서고금의 모든 거시기들을 포함한 그 누구도

아직까지 세월이란 놈을 이겼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靑春의 푸른 꿈을 꾸던 때가 언제였던가!

탱탱한 볼따구니에 빛나는 눈빛으로

미래의 희망을 좆아가던 그때가 언제이던가!

흘러간 물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시위를 떠난 화살은 어디엔가 업보처럼 박혀 되돌아오지 않는다.

사람 사는 것은 인생일장춘몽(人生一場春夢)처럼 찰나의 순간일 뿐이고,

세상은 끝없이 순환하고 변모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며,

만물은 ‘성’하면 반드시‘쇠’하는 물류성쇠(物有盛衰)의 법칙을 피해 갈 수 없으니

이것은 만유법칙(萬有法則)이며 또한 자연의 섭리라고 하더라.  

   

숙종 때 金三賢은,     

 - 녹양춘삼월(綠楊春三月)을 잡아매어 둘까.

- 센 머리 뽑아내어 찬찬 동여 두련마는

- 올해도 그리하지 못하고 그저 놓아 보내었다.

     

라고 계절이 바뀌는 아쉬움을 시조로 표현하였는데

그 심사나 내 심사나 시공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전혀 다르지 않다.     

계절을 놓치기 싫어하는 심사나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똑같고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다를 바 없다.

아직 탄식할 나이는 아니라고 스스로 자위해보지만,

대가리 터럭들은 날이 갈수록 모시바구니로 바뀌어가고,

퇴화된 세포들은 분진처럼 세상에 흩날려 공기를 오염시킨다.

청춘의 기색은 이미 오래전에 퇴색해 버려

그 어느 곳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찌들어 꾸리리한 호르몬 냄새가 스스로도 역겨워진다.

이게 현실이고 섭리이다.

그 세월이라는 놈을 절대절대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창문 너머 미루나무에서 매미가 울어대더라.

씨울씨울 찌지지지이~~!

씨울씨울 찌지지지이~~!

나는 한 달밖에 못 살아요!

나는 한 달밖에 못 살아요!라고 절규하는 것 같았다.

그럼 하루살이는......?     

으허허허허~어!

그래도 人間은 70~80년을 살지 않는가!!

하이고~!

겁(劫)나게 오래 사는구먼 잉?

그려 그렇당게~!

나는 그렇게 억지로 자위하고

또한 어거지로 방패치고 스스로 행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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