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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서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을 읽고서

by 일렁

우연한 기회에 '스토너'라는 책이 손에 들어왔다. 눈을 확 틀어잡는 자극적인 제목이 트랜드인 요즘, 스토너라는 다소 밋밋한 제목은 오히려 신선했다. 기대에 부풀어 책을 펼쳐 한 장 한 장 넘긴다. 그렇게 '스토너' 책속 주인공인 스토너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저자인 존 윌리엄스는 스토너처럼 미국의 영문학 교수였다. 그는 이 작품을 1965년 발표했지만 생전에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반세기나 지나서 ‘스토너’는 영국에서 ‘2013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이 되었고, 그후 지금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다. '스토너'는 주인공만큼이나 참으로 별난 이력의 책이다.

책은 스토너라는 주인공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전기는 아니다. 책속 주인공인 스토너는 전형적인 근현대사의 혼란과 비극의 시절을 살았다. 그의 청년과 장년 시절에 제일차, 제이차 세계대전이 있었다. 그래서 갖은 시련에 찢겨지고 닳은 신발처럼 발모양만 남아 사리를 품고도 이웃을 품을만한 여유를 가진 허허로운 아저씨 같다. 그렇다고 마냥 쉽지만은 않다.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특유의 알 수 없는 고집과 짠내로 뭉친 사리가 있음이다. 비범하지 않았던 스토너는 역경 속에서도 사랑할 때 사랑에 싸울 때는 싸움에 집중했다. 그때는 고통이 와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슬픔과 원망도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는 어울리지 않는 타자와는 거리를 두어 타협과 협의를 모르는 답답하리만치 우직한 성격이었다. 그런 그를 세간에서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평했지만 (어느 조직에서건 누구에게나 적군와 아군이 있기마련이다. 내 아군이 적군보다 힘이 셀때, 충돌과 곤란이 발생한다.) 정작 저자인 윌리엄스는 '스토너'에서 따뜻한 눈길로 스토너 등을 다독이며 인생의 승리자라고 말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강물의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리고 휘말렸지만, 떠내려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심장소리와 타인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자신을 존중하듯이 타인을 인정하며 살았다.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보다 농사를 우선으로 도우며 자랐다. 항상 다음철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형편이라 묵묵히 농사를 도왔다. 새로 생긴 미주리 대학교에서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신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은 스토너의 부모는 가세를 조금이라도 일으킬 욕심으로 스토너를 농과대학으로 보내는 장기투자를 감행했다. 농학을 일로 알고 대학을 다니던 스토너는 우연히 문학을 접한 후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황홀한 기분과 끌림을 느낀다. 자신의 목소리에 용기를 얻은 스토너는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대학에 들어올때 부모님과 유년시절이 담긴 고향을 떠났던 스토너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으로 고향을 떠나 그가 원하는 세상으로 걸어 들어갔다. 생전 처음 자신의 목소리를 따라 인생을 꾸리게 된다. 새로운 세상에서 스토너는 자신을 알아봐 준 스승님과 친구들과 문학과 세상을 공부하며 생전 처음으로 행복에 겨워 몸을 떤다. 그렇게 자신의 세상을 열었다.

세월이 지나 미주리 대학교 영문학 교수가 된 스토너는 어쩌다 참석한 파티에서 우연히 이디스를 만나 한눈에 반해 결혼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지 못한 채 불행했지만 끝까지 살았다. 이런 비극이 있을 수 없다. ‘네 인생은 네 것이지만 네 것이 아니기도 해.’ 아! 아! 성년이라고, 적령기라고 다 결혼해서는 안된다. 스토너는 중년이 되어 문학을 사랑한 여인을 만나 한때 사랑을 나누지만, 세상 손가락질과 규범의 잔인함에 항복하여 헤어지고 만다. 역시 세상은 녹록하지 않다. 세상에 정한 공식에서 벗어난 인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체념한 스토너는 고독에 빠져 문학과 교육에 더욱 매진한다. 세상은 그런 스토너를 한껏 조롱하고 학대한다. 마지막엔 암이라는 한방을 날린다. 스토너는 세상이 내리치는 펀치를 무서우리만치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스토너가 일생동안 챙긴 것은 열정과 사랑이었다. 자신을 사랑한 사람에게는 무한한 신뢰를 자신이 사랑한 것에 열정을 바쳤다. 사랑할 줄도 사랑을 받을 줄도 알았으니 이만하면 스토너 인생은 성공한 셈이 아닐까? 한 사람의 삶은 오롯이 그만의 세상이며 무대다. 그 무대에서는 그가 주인공이다. 자기만의 무대를 수놓으며 살아내야 한다. 스토너는 굳건하게 살아냈고 씩씩하게 죽었다. 내 세상은 어떤가, 솔직히 나는 두렵다.

4녀 1남 부유하지 못한 가정에서 장녀로 태어난 나는 어렸을 적부터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 살림밑천이다'라는 소리를 허다하게 들으며 자랐다. 가족을 내 몸처럼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알았다. 간혹 받아온 좋은 성적표도 가족의 기쁨을 위해 사용했고 가족이 기뻐하면 나도 덩달아 우쭐했다. 힘든 어머니를 도와 동생들이 무탈하도록 정성으로 보살폈다. 어느덧 나는 우등상을 받는 애 늙은이가 되었다. 나라는 존재는 가족이 행복할 때 잠깐씩 함께 미소지을 수 있었다.

대학에 가서,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 지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뭐가뭔지 알 수 없었다. 뭔지도 모를 자유를 흥청망청 흐늘거리며 만끽한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직장에 들어갔고, 뒤이어 동생들의 앞길을 터주기 위해 결혼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은 두 아이 엄마다. 훌쩍 자란 아이들은 이제 엄마 간섭일랑 필요없다는데, 나는 서운하다. 상실감과 허전함은 계속 너는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난 무엇을 좋아하는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백세시대라면 아직도 나는수십년을 더 살아야 한다. 현기증이 난다. 딱히 실패랄 것도 없는 인생이지만, 도대체 난 누구인지 모르겠다.

나에 대하여 묻는 것도 실로 너무 오랜만이다. 하지만 반갑다. 어쩌다 등록한 글쓰기 취미반에서 발견한 내 모습을 보고 나는 용기를 내 글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모습도 낯설다. 고교시절 곧잘 글을 써서 칭찬받곤 했던 그때 모습이 겹친다. 나는 과연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잡힐 정도로 설레인가? 스토너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것을 향한 열정을 쏟을때 살아 있다고' 내가 진정 살고자 한다면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내 사랑을 찾아야 한다. 독서와 글쓰기가 과연 그것일까? 나를 설레게 할 수 있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작이라는 단어를 잊고 산지 너무 오래되었다. 지금까지의 나, 그간 잘 버티고 살아내느라 고생했다. 다독여 위로해 준다. 그리고 지금부터 나로 살고 싶다. 낯설지만 나와 친해지고 싶다. 스토너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무엇에 열정을 쏟으며 '진정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다. 그러면 스토너처럼 열정 덩어리를 품고서 담담하게 죽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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