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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ul 25. 2019

아는 사람이 한 명 없는 외국에서 살아남기 - 입을 옷

한국에는 습하고 더운 여름을 지나고 있을 때 여기 모리셔스는 ‘겨울’을 지나고 있다. 모리셔스 기준의 최저기온이 약 21도 정도 되는 겨울 말이다. 남반구에 위치한 모리셔스는 한국과 기온이 반대이다. 연중 20도를 웃도는 기온이지만 나름대로 겨울과 여름이 구분되어 있다.     


가장 더운 시기는 1월 가장 추운 시기는 지금인 7월이다. 누가 섬 아니랄까 봐 아침저녁으로는 바람도 정말 많이 분다. 여름이 11월에서 4월, 겨울이 5월에서 10월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7, 8월이 성수기이겠지만 날씨가 선선한 모리셔스는 이때가 비수기이다.     


모리셔스에 오면서 ‘추우면 뭐 그렇게 춥겠어.’라는 생각으로 정말 여름옷 위주로 챙겼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남반구 하면 날씨에 대한 두 가지 기억이 있지만 이때 배운 교훈은 바로 까먹은 터다.     


고등학교를 끝내고 최대한 빨리 다른 나라를 구경하고 싶어서 호주 여행을 감행했다. 한국은 졸업시즌이어서 한 겨울이었는데 여름인 나라에 가니 기분이 좋았다. 한 달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올 때는 다시 한국이 겨울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조리를 신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인천공항에 내려 모두가 외투를 잠그면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나는 조리를 신어 발이 얼어버리기 직전 겨우 집에 도착했다. 이후 대학에 처음 간 오리엔테이션에서는 겨울인데 까맣게 타버린 나를 보며 조금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일하고 있던 시절. 6월에 휴가를 내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적도에 위치한 콩고에서는 건기, 우기가 있지만 년 중 온도의 차이가 거의 없기에 남반구로 내려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마냥 여름옷을 잔뜩 챙겼다.     


목적지는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이었다. 한번 요하네스버그에서 경유를 해야 해서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사람들은 주섬주섬 챙겨 왔던 겉옷을 챙긴다. 벌써부터 싸해진 기분에 공항에 도착하니 너무 쌀쌀하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면서 다시 비행기는 떴고 나는 케이프타운에 도착했다. 너무 추워서 우선 임시방편으로 스카프를 샀다.     


그제야 숙소에서 짐을 풀고 생각을 해보니, 6월이면 한국에서는 막 여름이 다가오려는 그때, 남반구인 남아공에서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액티비티를 하던 추웠다. 일주일 휴가에 겨울옷을 사기에는 아까운 마음에 있는 여름 셔츠만 겹겹으로 입으면서 여행을 마쳤다.     


이렇게 몸으로 교훈을 얻었지만 또 이렇게 까먹고 이번에도 여름옷만 챙겨 왔다. 별수 있겠나. 또 한 번 내가 있는 나라의 위치를 다시금 깨닫고 주섬주섬 긴팔을 사러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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