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받아쓰기
어려서부터 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래서 꿈꾼 곳이 외국어 고등학교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외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영어실력이 급격히 상승하였는데 (외고는 떨어졌다) 물론 학원에서 밤낮 할 것 없이 수업을 들은 이유도 있겠지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건 받아쓰기였다. 당시 학원 선생님이 영어 듣기 문제를 푼 후 모든 듣기 문제와 보기를 받아쓰기하도록 시키셨다. 듣는 모든 문장을 받아쓴 후 스크립트와 비교하여 다른 부분을 빨간펜으로 고쳐 쓰는 일이었다.
계속 마이마이를 무한 돌림 하며 이 엄청난 노동, 시간 집약적인 받아쓰기 연습에 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매일 받아쓰기를 한 결과 몇 주 후 놀랍게도 들리지 않던 문장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정말 놀랍게 점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을 되살려, 정체돼있고 너무 다가가기 어려운 프랑스어라는 언어에 이 방법을 대입해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루한 연습인지 알지만 그만큼 효과가 대단하기에 이를 믿고 중3 시절을 떠올리며 시작하였다. 받아쓰기 연습을 해보면서 느낀 점은 오히려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받아쓰기 효과가 더 좋다는 것이다.
프랑스어의 철자법이 얼마나 악랄한지는 이 두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다.
ver, vert, vers, verre 이 네 단어 모두 [vεːʀ]라는 동일한 발음을 가지고 있다.
cou, coup, coût 이 세 단어 모두 [ku]로 동일한 발음을 가지고 있다.
각각 r, t, s, e로 끝나고 u, p, t로 끝나는데 어떻게 같은 발음이 나는지 황당할 다름이지만 프랑스어에는 마지막 철자는 발음을 하지 않는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많다). 이 규칙으로 인해 프랑스인을 포함한 많은 프랑스어 학습자들이 철자를 제일 어려워한다. 하지만 받아쓰기를 하고 후에 스크립트를 비교하는 연습을 많이 하면 발음과 철자의 이 어마어마한 격차를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다. 이 연습을 하면서 분명 듣기에서는 ver로 들었지만 문맥에 따라서 이 단어가 ver, vert, vers, verre 일지는 문맥에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프랑스어 발음에서 중요한 연음 규칙도 자동으로 습득할 수 있게 된다. 나의 추천목록에 있는 팟캐스트 one thing in a french day는 쉬운 일기를 이야기하고 텍스트까지 올려주어서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분들에게 적합하다. 현재 부분적인 텍스트는 무료로 볼 수 있으나 유료 구독을 하여야만 전체 텍스트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꼭 이 자료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이해하고 싶은 모든 듣기 자료를 받아쓰기할 것을 강력 추천하다. 그럼 어느샌가 이해가 안 되던 낯선 발음들이 의미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