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포니 세계
처음 프랑스어를 접한 이유는 프랑스에 관심이 있어서라기 보다 아프리카에서도 많이 쓰이는 언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프랑스어권 사람들을 만나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프랑스어권의 세계는 더 컸다. 처음 프랑스에 가서 사귄 친한 친구 두 명만 하더라도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프랑스령의 레위니옹, 카리브해에 있는 과들루프 출신 친구였다.
프랑스어권은 프랑코포니(francophonie)라고 부르며 전 세계 조직도 존재한다. 국제 프랑코포니 기구(organization internationale de la francophonie)라는 조직은 1970년에 설립되어 총 54개 국가 회원국으로 있다. 아프리카 국가(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59%가 아프리카인이다) 뿐 아니라 레바논, 캐나다, 베트남 등 대륙을 초월한다. 이렇게 다양한 회원국을 가지고 있는 만큼 프랑코포니 조직을 통해서 프랑스어와 그 언어적 문화적 다양성을 장려하는 것이 목표이다. 단 하나의 언어를 배워서 54개국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정말 엄청난 가성비 아닌가?
이 조직에 따르면 프랑스어 화자는 전 세계에서 총 3억 명이고,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이 쓰이는 언어이다. 프랑스어를 구사함으로써 토박이 파리지앵 은퇴한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콩고 민주공화국의 시골 팜유 농사꾼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초반에는 이런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프랑스 사람들은 모국어만 배워도 54개국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큰 국가의 힘인가? 한국어도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가성비를 가진 프랑스어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많은 국가를 식민지로 삼았으면 이렇게 많은 나라에 프랑스어가 쓰일까, 얼마나 많은 국가의 현지어가 프랑스어에 가려졌을까 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 한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나? 프랑스어 때문에 얼마나 많은 현지어 도서관이 불탔을까. 이를 생각하면 조금은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