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를 배우면서 여러 번 절망스러운 경험이 있지만 명사에 여성, 남성이 있다는 사실 후에 다시 한번 고비가 찾아온다. 바로 숫자를 배울 때이다. 프랑스어에서 고난은 70에서 시작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70을 말하기 위해서는 60,10 (soixante-dix)을 함께 이야기해야 하고, 71은 60,11 (soixante-onze) 72는 60,12 (soixante-douze) 이렇게 이어진다. 80은 더욱 가관이다. 80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4,20 (quatre-vingt)를 말하면 된다. 81은 4,20,1 (quatre-vingt-un) 82는 4,20,2 (quatre-vingt-deux) 이렇게 이어진다. 90은 다시 4,20,10 (quatre-vingt-dix) 이렇게 이어진다.
이렇듯 황당한 프랑스어의 숫자가 원망스럽다면 켈트족을 원망하면 될 것 같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역사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가설은 십진법을 쓰는 로마 사람들과 달리 프랑스 알프스 주위에서 거주하던 켈트족은 이십진법을 사용하였고, 현재는 70에서 100을 세는 방식에서만 20진법의 진한 냄새가 남아있다는 가설이다. 재미있게도 고대 문명에서는 이십진법을 사용하는 문명이 많다는 것이다. 마야 문명, 아즈텍 문명에서도 20진법이 사용된 것이다. 십진법은 손가락이 열 개여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이보다 진화한 문명의 선조들은 발가락까지 사용하여 숫자를 셌나 보다. 발가락까지 사용하여 숫자를 센 켈트족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측은해져서 이 힘든 프랑스어 숫자를 배우면서 들었던 짜증도 조금 수그러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프랑스어에서 번호를 받아쓸 때 말을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4 (quatre)로 시작하여서 4로 적었다가 20이 나오면 80 (quatre-vignt)이 되는 것이고 혹시라도 4, 20, 11이라도 나오면 91 (quatre-vingt-onze)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어학연수 시절에 가장 긴장하던 순간이 친구들과 번호를 교환할 때였다. 실컷 지금까지 배운 프랑스어를 활용하며 친해졌다가 마지막에 번호 교환할 때에 번호를 잘못 받아 적어 헤어진 후 전화해보니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자동응답기를 듣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연습하여 겨우 100까지 셀 수 있게 됐다 하더라고 두 번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이는 영어에서도 그렇듯 천 단위로 끊어지는 숫자이다. 한국에서 숫자를 이야기할 때는 만 단위로 끊어지기 때문에 큰 숫자를 배움에 있어서 한국 숫자로 바로바로 치환이 어렵다. 대학교 때 이에 대해서 신박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신 교수님이 계셨다. 그건 바로 카지노 가기이다. 교수님도 큰 숫자 때문에 항상 헷갈려하셨다가 우연히 프랑스에서 들린 카지노에서 큰 돈을 배팅하게 되면서 그 이후로 숫자에 대해서는 헷갈릴 일이 없었다 후문이다.
해외에서 카지노를 가본 적은 있지만 돈을 배팅하지는 않아서 그런지 아직 큰 숫자는 나 또한 두 번 생각하는 부분이다.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친구에 팁을 공유하자면 큰 숫자는 쉼표 두 개가 찍힌 1,000,000 즉 백만(million)을 외우고 이를 기준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십만 (cent mille) 100,000
백만 (million) 1,000,000
천만 (dix millions) 10,000,000
이를 기준으로 잡고 0이 빠지면 즉, 쉼표 하나인 천(mille)으로 단위로 내리고 쉼표 앞의 숫자는 올려서 십만, 0이 더해지면 단위는 그대로 (million)하여 쉼표 앞의 숫자만 10으로 올려 dix millions, 즉 천만 10,000,000 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쉼표를 기준으로 시각화해서 연습하면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큰 돈을 들고 카지노에 한번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