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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Mar 17. 2021

물, 그녀가 좋아?

프랑스어의 명사의 성과 인칭대명사

모리셔스에 있었을 때 일이다. (그렇다 모리셔스에서도 불어가 사용된다) 섬나라인 만큼 사방이 그림과 같은 인도양 바다로 둘러싸여 있을 때다. 스노클링을 하려고 바다에 들어가 있는데 아직 배 위인 사람이 물어봤다.


‘물 어때? 좋아?’
프랑스어로는 어떻게 말할까?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l’eau, elle est bonne?’



프랑스어의 모든 명사가 여성형, 남성형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말인즉슨 그 명사를 인칭 하는 주어 또한 여성, 남성으로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물은 프랑스어로 eau, 여성명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eau라는 명사가 주어가 되었을 때도 그녀(elle)로 문장을 시작해야 한다. 한국어로는 어색하지만 번역하자면 ‘물, 그녀가 좋아?’가 된다. 



처음에는 이렇게 남성, 여성 명사에 따라 주어에 성이 있는 것이 굉장히 어색했다. 나는 왜 물이 여성형이어야 하는지 불은 남성형인지 왜 고래는 여성형이고 돌고래는 남성형인지 납득이 안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어색함을 넘어서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기 위해서는 남성형 여성형 구분이 생물학적 구분이 아닌 언어적 구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앞에서 물을 지칭하는 elle은 ‘여자’ ‘그녀’의 elle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여성형 명사인 eau를 지칭하기 위한 영어의 ‘it’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요리 중 소금이 안 보인다면 남성형인 소금은 구어로 ‘소금, 그(그것)는 어디에 있어?’ ‘il est où, le sel’? 그런데 고춧가루가 안 보인다면 여성형인 고춧가루 때문에 ‘고춧가루, 그녀(그것)는 어디에 있어?’ ‘elle est où, la poudre de piment?’라고 물어봐야 한다.


영어였다면 모두 it으로 이야기하면 될 것을 스노클링 중에도 물이 여성형이었는지 남성형이었는지 요리 와중에 소금, 고춧가루 찾는데도 남성형 여성형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절망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독일어에는 남성형, 여성형 뿐만 아니라 중성형도 있다는 사실을 위안 아닌 위안으로 삼아보자.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래, 프랑스어는 그나마 여성, 남성만 있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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