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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Mar 31. 2021

프랑스어, 무조건 따라 하지는마라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유난히 ‘무조건’이라는 단어가 많이 따라붙는다. ‘무조건 따라 해라’, ‘무조건 외워라.’, 나도 어느 정도 무조건이라는 단어에 동의하는 바이다. 결국 외국어는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이 제1의 목적이기 때문에 단어의 어원이나 품사를 아는 것보다 인사말 한마디를 입으로 내뱉는 것이 중요하다.


나 또한 이런 생각을 가지고 프랑스어를 배울 때 모든 프랑스어를 습득하려고 애썼다. 프랑스 어학연수 시절에는 프랑스 친구들과 문자를 할 때면 내가 받은 문자를 공책에 다시 적어서 문장을 해석하고, 다른 친구에게 그 문장을 사용했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면 안 듣는 척하면서 옆자리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기 문제 삼아 이해해보고 단어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마냥 무조건 따라 하다가는 난감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귀국한 나는 6개월 동안 애써 늘린 실력을 유지하지 위해 계속 프랑스와 관련된 콘텐츠를 접했다. 그러던 와중에 프랑스에서  2008년에 개봉한 영화 ‘클래스(원제: Entre les murs)’를 보게 되었다. 한국어로 해석하면 ’ 벽 사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파리의 20구의 중학교에서 일어나는 학생들과 젊은 교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200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였지만 나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보다는 영화에 나온 중학생들의 말투에 집중했다.

프랑스 중학생의 말투를 접하고 나도 더 자연스러운 불어를 구사하고 싶어서 영화에 나오는 대사들을 곱씹으며 따라 했다. 대사에 그치지 않고 말투까지 비슷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노력하던 어느 날, 나는 대학교 동아리 면접을 보게 되었다.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 학생들을 도와주는 동아리 면접이었는데 내가 프랑스어를 한다는 사실이 강점이 될 수 있었다. 동아리 면접관으로 내가 알고 지냈던 프랑스 친구가 들어왔고, 질문이 시작됐다. ‘왜 이 동아리에 들어오고 싶나요?’, ‘외국 학생에 서울에서 구경시켜주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어디인가요?’ 등의 질문이 프랑스어로 오가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대답했다.


다행히도 동아리에 합격해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그 프랑스 친구가 하루는 그 면접날을 기억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너 말투가 왜 그래?’


친구는 내 말투가 사춘기가 심하게 찾아온 중학생 같다며, 면접에서 이런 말투로 대답하는 나를 보니 황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는 것이다. 영화의 중학생 말투를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나의 말투 또한 반항기 넘치는 중학생의 말투가 돼버린 것이다. 친구는 나에게 말투를 바꾸라고 조언을 줬고 그때부터는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뉴스를 주기적으로 보고 따라 하기 시작하며 그 반항기 충만한 중학생 말투에서 겨우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카멜레온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 환경에서 지내면 내 색은 나도 모르게 환경에 맞춰져 변해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사실 한국에 온 친구들에게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온 한 친구는 놀랄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한국 욕을 구사할 수 있고, 대화할 때도 스스럼없이 욕을 달고 살았다. 어쩌다가 이런 언어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물어보니 스케이트보드가 취미였던 그 친구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보드 동아리에 들게 됐고, 거기서 형들로부터 다양한 욕을 접하고 본인 또한 입에 배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한 친구는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핀란드 친구였는데 건장한 체구에, 큰 덩치, 금발 머리까지 보는 즉시 영화배우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를 가진 친구였다. 그 친구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헐… 대에박!’ 그 톤이 높고 자연스러워 설마 이 친구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알고 보니 이 친구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사귄 한국인 여자 친구와 가장 많이 한국어를 사용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20대 초반 여자의 말투를 갖게 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와 함께 있고, 어떤 콘텐츠를 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외국어 말투도 정해진다. 정보화 시대에 사는 것의 장점을 꼽자면 직접 그 나라에 가지 않아도 닮고 싶은 말투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같이 말하고 싶다면 대통령 연설을 듣고, 아나운서 같이 말하고 싶다면 뉴스를 보고, 대학생처럼 말하고 싶다면 20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무조건 따라 하지 말고, 어떤 환경을 닮고 싶은지 고른 후 무조건 따라 해라. 자기가 변하고 싶은 환경을 마음대로 선택하여 색을 바꿀 수 카멜레온, 이 얼마나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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