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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un 25. 2019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외국에서 살아남기 - 살 곳

정말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는 나라에 와서 살게 되면 다시금 막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딛는 사람이 된다. 삶을 꾸려 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고, 생각을 다 정리할 시간도 없이 바로 삶을 몸으로 맞딱 들이게 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갔던 곳은 호주였다. 어느 도시로 여행할지 계획도 세우고, 여행만 하면 지루할 수도 있기 때문에 봉사활동도 하기로 했다. 여행 루트도 짜고, 봉사활동도 신청해놓고, 비행기 표까지 다 끊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몸을 실은 비행기에서 호주에 도착할 때쯤 옆자리에 앉은 호주 가족과 이야기를 섞게 되었다. 한국에서 왔고, 호주는 처음이고, 여행할 도시가 어딘지 같은 주제로 얘기를 하다가 가족이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서 지내?” 비행기가 착륙하기 20분도 남기지 않고 받은 이 질문에 나는 머리가 하얘졌다. 음. 그러게요. 저 어디서 자야 하죠?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는 그 당시까지 단 한 번도 살 곳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 댁에 살던 부모님이 구해주신 자취방에서 살던 그때까지 나에게 사는 곳은 항상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주에 착륙하기 몇 분 전 그제야 사는 곳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고 '찾아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호주 여행 첫날은 운 좋게도 비행기에서 만난 가족이 호스텔이 많은 지역에 내려다 주었다. 하지만 해는 이미 졌고 몇 군데 호스텔을 돌아다녀보아도 모두가 다 꽉 찬 상황. 호스텔을 전전하다 보니 나와 같이 아직 숙소를 찾지 못한 독일 여행자 두 명이 있었다. 함께 절망적인 마음으로 호스텔을 더 돌아다녔다. 가까스로 찾은 호스텔에는 딱 한 방이 비어 있었고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하고 숙소 헌팅 동지 두 명을 뒤로하고 그곳에서 짐을 풀었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미안하다. 좋은 잘 곳을 찾았길.) 이 경험을 한 후 나는 어디를 가던 내가 묵을 곳에 대한 계획은 철저히 하게 되었다.      


모리셔스에서도 우선 내 머리 눕힐 곳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여기는 얹혀살 부모님 집도 며칠만 재워달라고 할 만한 친구도 없다. 그래서 우선 선택한 곳이 회사와 가까운 호텔이었다. 하지만 침대만 덩그러니 있는 호텔에서 생활하다가는 오래 버틸 수 없기 때문에 빨리 장기적으로 살 곳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음 해야 할 일은 부동산 사이트에 올라온 집을 보는 것이다.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해 안전한 곳, 출퇴근이 편한 곳, 내 예산에 맞는 곳을 좁혀 가면 이제 하루에 멀다 하고 부동산 사이트를 들여다보면 된다. 구글 지도로 집이 있는 곳의 지역을 보며 도시 이름과 친숙해지는 것은 덤이다.      


괜찮은 집이 있다면 바로 약속을 잡아서 둘러봐야 한다. 가격도 싸고 마음에 들지만 어딘가에 더 좋은 곳이 있을 것 같아 망설인다면 좋은 집을 놓치게 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부동산은 임대인과 임차인 두 곳에서 모두 수수료를 때기 때문에 주인은 최대한 빨리 (되도록이면 부동산을 통하지 않고) 월세를 놓을 사람을 찾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마음에 드는 집이 있었지만 주말 동안 고민하고 월요일 아침에 연락하니 이미 집이 나가버렸다. 다시 부동산 사이트 매물 보기 단계부터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살 집을 찾다 보면 내가 어떤 생활방식으로 살고 싶은지를 저절로 생각해보게 된다. 우선 내가 버는 돈으로는 어느 동네에 살 수 있는지, 그럼 그 동네에서 주택에 살고 싶은지 아파트에 살고 싶은지,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싶은지 혼자 살고 싶은지, 마트에 가까운 곳에 살고 싶은지 공원이 가까운 곳에 살고 싶은지, 거실이 큰 곳에 살고 싶은지 주방이 큰 곳에 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할 것 투성이다. 이런 결정 하나하나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보여준다. 꽤나 고되고 스트레스받는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한 뼘 더 알아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으면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월세를 최대한 깎아본다. 이후 주인을 만나 내가 월세를 꼬박꼬박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좋은 인상까지 남겼다면 계약하는 일만 남았다. 그 달 월세, 보증금, 부동산 수수료까지 봉투에 고이 챙겨 계약까지 성공하였다면 우선 이 낯선 나라에서 크게 한숨은 돌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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