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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Jun 24. 2019

바다 위에는 산이 있고, 바다 아래는 폭포가 있네

르몬 산 등반기

모리셔스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비상시에 행동요령을 알려주는 동영상에서 조차도 젊은 커플이 구명조끼를 입고서 아주 잔잔한 아름다운 호수에서 서로 물장구를 치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지상낙원에 도착하니 산과 바다 해변 서핑 모두 그림의 떡같이 느껴졌다. 현실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한 시간이 넘게 출근버스에 몸을 실는 것이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생활만 하고 사실상 모리셔스를 구경할 기회가 없었다. 그렇다. 지상낙원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은 출퇴근을 한다.


그러기를 3주. 놀러 온 친구 덕에 드디어 섬을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가기로 한 곳은 남서쪽에 위치한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인 르몬(le morne) 산이었다. 산 정상에 오르면 모리셔스를 내다볼 수 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하여 아침 일찍 산을 오르기로 했다.     


산의 입구에는 지키는 사람은 없지만 노트가 한 권 놓여있었다. 출입객의 이름, 국적, 번호, 동행인의 수 등 간단한 인적정보를 적어야 하는데 이걸 적으니 괜히 비장해진다.     



초반에 길은 조그만한 돌은 꽤 많지만 힘들지 않게 숨을 고르며 걸을 수 있게 되어있다. 나무가 꽤나 울창해서 햇빛도 많이 들지 않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넘게 걸으니 산 중턱에 도착하였다. 산 정상이 보이는 시야가 트이고, 이와 더불어 경고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위험한 등반’이라고 적혀있다. 벌써 내려오고 계시는 아저씨한테 정상까지 올라갈 만하냐고 여쭤보니, 네 발을 쓰면 가능하다고 하신다. 사실 여기까지의 산행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온 김에 정상까지 가고 싶은 마음에 등반을 시작하기로 했다.      


가파른 경사여서 두 손을 짚지 않고는 등반이 힘들어지다가 나중에는 정말 전략적으로 어떤 돌을 밟을지 미리 생각하지 않고 손을 내딛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는 곳들이 이어졌다. 몇 번이고 그만 올라가고 싶었고 지금 보이는 풍경도 충분히 눈부셨지만, 정상을 봐야 한다는 친구의 성화에 끝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이제 다 올라왔나 싶어서 내려오는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아직 좀 남았다고 한다. 조금만 더 가다가 시체 한구가 보일 때쯤이면 정상에 도착한 것이라며 오싹한 유머를 던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한발 한발 더 조심히 발을 내딛는다.







삼십 분 더 넘게 등반을 했을 때 드디어 ‘다 왔다!’라는 소리가 들린다. 르몬 정상에 도착하여 내려다본 모리셔스는. 뭐랄까. 누군가가 ‘지상낙원을 기대했던 널 위에 준비했어.’라고 말하며 보여준 풍경 같았다. 아래로 내다보이는 바다에는 산호초가 막고 있는 해안가 가까이는 밝은 푸른색을 띠며 반짝이고 있고 그 산호초에 찰랑찰랑 파도가 일고 있었다. 그 뒤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가 이어졌다. 르몬에서 내다보이는 방향으로 보이진 않지만 멀리 보이는 물이 수렴되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는 헬리콥터를 타고 보면 수중 폭포가 있다고 한다. 하늘에는 꼬리가 아주 긴 흰색 열대새 두 마리가 바람을 자유자재로 타며 비행하고 있다.  


산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가방 안에 넣어온 견과류를 먹었다. 아주 잠깐 '이제 다시 어떻게 내려가지?'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정상에서 부는 바람을 계속 맞으니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그냥 행복해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르 몬 산의 반대편에서 볼 수 있는 수중폭포의 풍경은 이렇다.

출처 - http://helicoptersmauritius.com/underwater-waterfall-maurit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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