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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May 28. 2019

비행기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모리셔스로 가는 길

• 서울-모리셔스 소요시간     

서울-홍콩: 3시간 20분      

홍콩-모리셔스 : 9시간 30분            

 


• 시계 및 전자기기의 설정 시간 다 바꾸기     

    시차가 있는 나라로 가는 거라면 모두에게 필요한 작업이다. 특히 환승하는 사람한테는 필수이다. 비행기 표에 적힌 시간은 현지 시간이기 때문에 시간을 바꿔놓지 않으면 환승할 때  혼란이 가중되기 일 수 있다. 마구 몇 시간에 빼지고 더해지는 이 시점에 시간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핸드폰 안에 한국 관련 앱들을 뒤로 옮기기     

    한동안 쓰지 않게 될 한국의 지도 앱, 배달 앱, 택시 앱, 멤버십 앱 등등을 핸드폰의 뒤 화면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이렇게 정말 내가 한국을 떠나는구나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 출국 직전 받았던 메시지 다시 곱씹어보기     

    출국 전에 받았던 메시지들은 괜히 비행기 안에서 한 번 더 보게 된다. 한국을 떠난다고 나를 생각해주고, 메시지를 적을 시간을 내준 고마운 사람들이 누구인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시 한번 잘 읽어본다. 이런 메시지들을 곱씹어 읽으면서 타지에서 힘내서 살 수 있는 에너지를 모은다.               


• 창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며 내가 얼마나 높이 올라와있는지, 위에서 보니 세상살이 고민했던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느끼기     

    이륙할 때 창밖을 보면 지상에서 볼 때는 대단해 보였던 것들이 조그마해지는 재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륙한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차도 건물도 점만 하게 보이다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러다가 하늘 위에 구름과 해가 뜨는 모습을 비행기 안에서 보게 된다면 지금까지 내가 고민했던 것들이 모두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구름 위에 있을 때 드는 이상한 순간이다.                


• 그러면서도 그 하찮은 것에 좀 더 고민하기     

    하지만 별거 아니게 느껴지는 건 잠시. 애석하게도 그렇다고 그 고민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창에서 얼굴을 돌리는 순간 바로 다시 고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착륙을 시작하고 구름 아래 점 같은 건물들이 형체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 고민들의 형체도 온전히 다시 나에게로  살아나게 된다.                


• 죽음을 상상해보고 내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는지 곱씹어보기     

    다른 이동 수단과는 다르게 비행기는 타는 순간 내 목숨을 담보로 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수치상으로는 자동차 사고가 훨씬 많겠지만 하늘에 떠있는 상태에서는 사고를 ‘당한다' 라는 느낌이 강해서일까 그 무기력함 때문에 비행기는 죽음과 연관된다. 비행기를 타고 있노라면 이 비행기에서 내가 죽는다면 어떤 사고 때문일까, 고통스러울까, 그럼 갑자기 내 옆에 앉아있던 사람과 유대감이 강해질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다가 내가 지금 죽는다면 어떨지,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지, 지금 죽어도 여한지 없는지 같은 생각이 든다. 지상에서는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죽음이라는 명제가 비행기 안에서는 갑자기 뚜렷해진다.               


• 영화보기 및 미처 못 들은 팟캐스트 듣기     

    비행을 하면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여가활동일 것이다. 비행기에서 제공하는 영화 목록을 훑어보면서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른다. 다만 너무 슬픈 영화는 피해야 한다. 비행기 안에서 슬픈 영화를 보다가 눈물, 콧물 쏙 빼서 새로운 나라에 눈이 부어 도착한 경험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듣는 매체를 좋아하는 나에게 비행시간은 들으려고 했지만 미처 듣지 못했던 팟캐스트를 듣기에 좋은 시간이다. 비행기의 웅웅 소리를 막기 위해서는 볼륨을 보통 최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청력 희생을 감수해야 하지만 말이다.               


• 글쓰기     

지금 이 글처럼 말이다. 그나저나 이코노미석의 좌석은 좁아도 너무 좁다.                


• 맥주에 얼음 넣어서 마시기     

    아프리카와 유럽을 자주 오간 탓에 12 시간 이상의 장시간 비행이 나의 비행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나에게 가장 괴로운 시간은 잠자다 일어나서  ‘이제 조금 있으면 도착인가.’하고 시계를 봤는데 이륙한 지 고작 2~3시간 남짓 지났을 때이다. 절망스러운 이 순간에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맥주와 얼음을 시켜 한 잔 마시는 것이다. 어중간하게 차가운 맥주를 더 시원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줄 테니 한번 시도해 보시길 권한다.                


• 도착하는 곳에 대한 정보 습득하기     

    도착지에 대해서 읽어봐야지 하고 산책이나 글들은 모아서 보는 시간이다. 비행기 타기 전에는 도착지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찼다면 비행기를 타고나서는 바로 도착지가 실제로 다가온다. 타기 전에는 볼거리가 뭐 있는지,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졌다면 비행기 안에서는 대중교통은 어떻게 타는지 보통 택시비는 얼마인지,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어떻게 가는지가 궁금해진다.       


• 입국신고서 작성하기     

    이 시간은 매번 까먹지만 이 순간만 되면 불현듯 떠오르는  '기내 가방에 펜 하나 챙길걸..' 하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는 순간이다. 이와 동시에 좌, 우, 대각선에 앉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길 기대하며 펜을 동냥해야 하기도 한다. 펜 동냥에 성공한다면 여권정보와 도착하면 지낼 곳이 어딘지 등의 정보를 적어야 한다. 국적, 사는 곳, 여권 발행처를 모두 대한민국으로 적으면서 나의 한국인의 정체성을 새삼스레 확인한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온몸이 두 손으로 꽉 구긴 종이짝 같이 느껴지면 보통 도착지에 거의 다 와간다는 신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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