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서평을 쓰고 있다. 서평을 쓰다 보면 책의 내용이 기억 속에 다시 머무르거나 생각, 느낌, 감동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서평은 독자들에게 책을 객관적인 시점으로 소개하는 글로 나의 감정과 주관적인 생각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류시화 시인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읽고, 서평을 쓸 수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 자도 쓸 수가 없다. 마음속에 똬리 틀고 있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가는 것을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그게 진한 잔상으로 남아 이 책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다. 결국, 서평을 포기하고 독서 후기를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 너무 잘 알려진 말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항상 해당하지는 않는다. 인생이 자기 맘대로 되지 않아 괴로운 이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류시화 시인은 이들에게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라는 산문집을 선물처럼 내어 주었다. 시인이 쓴 산문이라 문장의 화려함만을 생각했지만, 정작 글에서 뿜어 나오는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류시화 시인은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다.”라고 얘기한다. 내가 꿈꾸고 기대하는 인생이 아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삶이 선물이라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이에 대해 “당신이 생각하는 인생이 아닐 거야. 그래서 하루하루가 난해하면서도 설레고 감동적일 거야.”라는 말을 덧붙인다. 책을 읽고 나면 류시화 시인이 그렇게 얘기하는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서는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관계에서 찾아간다.”, “우리 삶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을 몇 번이나 만났는가에 따라 방향이 정해진다. (p44)”라며 관계의 중요성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장 의미 있는 관계는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관계는 나의 ‘음’을 이해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처음 만났는데도 내 마음속 ‘음’을 아는 사람, 마치 몇 생을 알고 지낸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 이유도 모른 채 바로 마음이 연결되는 사람, 무슨 말을 할지 마음에 품기도 전에 어느새 알고 있는 사람.” p64
아울러 다른 사람의 꽃을 피우는 삶도 관계를 의미 있게 한다고 얘기한다.
“삶을 꽃피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스스로 꽃을 피우는 일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의 삶이 꽃피어나도록 돕는 일이다.” p45
하지만, 항상 관계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때론 관계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픈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가 기대한 인생이라면 벅차고 행복하겠지만, 항상 그런 삶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지 못했던 인생이 내 앞에서 펼쳐지면 당장은 힘들고 괴로워서 좌절감을 맛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분명한 건, 내가 생각한 관계 또는 인생이 아니더라도 나를 돌아보며 한층 성장할 좋은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하는 것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행복과 불행은 같이 있어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
“신은 비극과 상실을 일으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인생의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돌아가는 길투성이의 인생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일과 행복한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 플랜 A보다 플랜 B가 더 좋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더 좋다. 플랜 A는 나의 계획이고, 플랜 B는 신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p181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어찌 보면 “인생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진다.”가 맞을지 모르겠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마음을 평안하게 바꿀 수 있다. 본래 인생에는 굴곡이 있기 마련이고, 항상 순탄하지 않은 법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꿈을 꾸다 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인생을 사는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인생은 우리에게 엄마 기린과 같다. (엄마 기린이 새끼 기린에게 하는 것처럼) 인생이 우리를 세게 걷어차면 우리는 고꾸라진다. 하지만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나야만 하고, 또다시 걷어채 쓰러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일어난다. 그것이 우리가 성장하는 방식이다.” p152
우리가 꿈꾸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세상의 기준이 자신의 갈망을 채워 주지 못한다면 그때가 바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자신과 맞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자신을 그 사람에게 맞출 것이 아니라 자신과 맞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보다 자기 자신이 되어 미움받는 것이 덜 위험하다. 다른 사람들을 잃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p187
그러다 힘이 들 때면, 나는 잠시 여행 왔다 곧 떠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괴로운 마음보다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이곳에 잠시 여행 온 것이다. 나는 곧 떠날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의 무게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순간에 더 집중하게 된다.”
중요한 건, 사람마다 여행은 틀린 것이 없고, 자신이 만들어가는 여행이 있을 뿐이다.
“잘못된 여행은 없으며, 모두가 각자의 여행을 통해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고 있다.” p239
마지막으로, 류시화 시인이 인생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다른 인생이라고 했던 의미를 다음의 말에서 되돌아본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정말 좋은 일이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니까” p215
인생은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특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얽힌 인생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때마다 괴로워하기보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날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