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외국어 공부한 이야기 - 2
나는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전혀 배우지 않은 세대다. 영어라는 과목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는 알파벳조차 배울 일이 없었다.
학교 바깥에서도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저학년 때부터 대부분의 아이들이 알파벳과 간단한 영어 단어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많은 아이들이 구몬이나 눈높이 같은 학습지를 했다.
엄마는 원래 회사원이었다가 아빠의 직장 때문에 함께 서울을 떠나면서 경력이 단절되었다. 우리 가족이 서울로 돌아오고 나서 엄마는 눈높이수학 선생님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눈높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더 꾸준히, 더 오래 했다. 수학은 여섯 살 때, 영어는 1학년 때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책을 좋아하고 공부도 잘 하는 아이이기는 했지만 수학과 영어 모두 내가 좋아하는 과목은 아니었다. 특히 영어를 좀 더 지겨워했던 것 같다. 3학년 때 학교 숙제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일기를 쓰고 담임 선생님에게 코멘트를 받아야 했는데, 하루는 대강 이렇게 썼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영어 공부가 싫다. 엄마는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게 될 테니까 나도 영어를 배워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개성시대다. 남들이 다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나도 영어를 잘 할 필요는 없다.’
담임 선생님이 정확히 뭐라고 코멘트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선생님이 ‘개성시대’ 부분을 보고 요즘 말로 빵 터졌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나와 함께 내 일기장을 훑어보던 엄마도 그 부분에서 빵 터졌다. 초등학교 3학년이기에 펼칠 수 있었던 논리였다.
지금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그때 눈높이영어의 기본적인 체계는 문법을 설명한 다음 수많은 예문을 주고 빈칸을 채우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문법은 반복해서 공부해야 한다며 같은 범위의 학습지를 여러 번 반복하게 했다. (엄마는 수학 선생님이어서 내 눈높이영어를 직접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담당한 영어 선생님들과 항상 같은 사무실에 있었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더 활발했다) 어린 나는 그 점 때문에 영어를 더 지루하게 느꼈을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에 반복해서 배웠던 to 부정사 예문들은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특히 ‘to 부정사의 주어적 용법’ 부분에서 가장 첫 예문이었던 It is hard to study English. It은 문법상으로만 주어인 가주어, to study English가 의미상의 진짜 주어. 해석은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힘들다.’ 문장의 뜻에 공감했기에 더 선명하게 기억나나 보다.
지루한 문법 위주의 영어에 대한 비판은 많다. 그러나 나는 어른이 된 후 여러 명의 원어민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대부분이 눈높이영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숙제를 내 줬다. 문법에 대해 배운 후 수많은 예문의 빈칸 채우기. 나이가 든 후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아기 때 모국어를 배우는 과정과 같을 수 없고, 외국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지루하더라도 문법을 반복해서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내게는 분명히 효과가 있는 방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영어의 밑바탕을 이루는 가장 큰 요소는 초등학교 때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눈높이영어다. 특히 지금도 영어로 to 부정사가 들어가는 문장을 말하거나 써야 할 때, 20년도 더 전에 배운 그 문장을 자연스럽게 연상한다. It is hard to study 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