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외국어 공부한 이야기 - 3
내가 어릴 때는 아직 애니메이션보다는 만화영화라는 말이 더 흔했다. 그리고 만화영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 취급을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나갈 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나도 중학생이 되면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닌데, 만화영화는 그만 봐야 하지 않을까?
그 때 아주 우연히 <슬레이어즈>(한국에서는 <마법소녀 리나>라고 알려져 있었다)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 번째 시즌을 보게 되었다. 선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세계관과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캐릭터들은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서던 내게 아주 신선한 충격을 줬다. 만화영화를 그만 보겠다는 계획은 전면 백지화. 원래 무엇 하나에 빠지면 헤어 나올 줄 몰랐던 나는 <슬레이어즈>에서도 헤어 나오지 못했고, 인생을 바꿔 놓을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덕질은 당연히 인터넷으로 하는 거지만 아직 90년대였던 그때는 달랐다. 인터넷이 아예 없는 집도 많았다. 우리 집은 다행히 곧 인터넷을 설치하기는 했는데, 전화선을 통한 접속이었다. 1초에 56킬로바이트의 속도. 인터넷 익스플로러도 아닌 넷스케이프라는 브라우저를 열고 사진을 클릭하면 사진이 10초 정도에 걸쳐서 느릿느릿 화면에 나타났다. 음악이나 동영상을 다운로드하는 일은 아직 꿈일 뿐이었다.
다행히 우리 동네에는 애니메이션과 게임 관련 물품을 취급하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나는 용돈을 아껴서 그곳에서 화보집을 두 권 샀다. 정확히 어떤 경로였는지는 몰라도 일본에서 직접 들여온 물건이었기 때문에 전부 일본어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일본어가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다.
예전에 아빠가 일본어를 몇 달 배우다가 포기한 덕분에 우리 집에는 일본어 사전과 초급 교재가 있었다. 아빠는 지갑에 넣어 다니던 가나 암기 카드를 내게 줬다. 카드의 앞면에는 일본 고유어와 한자어를 표기하는 히라가나, 뒷면에는 외래어를 표기하는 가타가나가 있었다. 일본어를 정식으로 배우는 사람들은 히라가나부터 외우고 나서 가타가나를 외우는데, 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외국어(라기보다도 국적불명의 언어)로 된 이름부터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가타가나를 더 먼저 외웠다.
90년대가 끝나고 2000년으로 넘어가면서 우리 집 인터넷은 드디어 전용선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집 전화기를 들면 인터넷이 끊기는 일도 없었고, 인터넷을 쓴 만큼 고스란히 전화요금이 올라가는 일도 없었다. 속도도 훨씬 빨라져서 꿈에 그리던 음악과 동영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지금 같은 인터넷보다는 PC통신이 대세였다. 나는 그전부터 PC통신의 일본 애니메이션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인터넷이 빨라지면서 동호회에서 보내는 시간도 늘어났다.
가장 많이 한 일 중 하나는 애니메이션 노래를 받아서 듣고, 가사를 읽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목청껏 따라 부르는 일이었다. 일본어 ‘능력자’들이 지금만큼 흔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 명 있었고, 노래 가사에 해석(무슨 뜻인지)뿐만이 아니라 독음(어떻게 읽는지)까지 달아서 올려줬다. 나는 노래를 통해서 일본어의 기본적인 단어와 문법을 익혔다. 노래는 뜻을 몰라도 멜로디와 함께 외울 수 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반복해서 듣고 따라 부르게 된다는 점에서 좋은 교재였다.
물론 다른 ‘덕후’들과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도 많이 봤다. 그러는 사이에 자막 없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조금씩 늘어났다. 다만 단점은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표현보다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표현을 훨씬 빨리 익히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고등학교 때쯤 애니메이션 음악이 아닌 일본 음악도 좋아하게 되면서 쉽게 해결되었다. 좋아하는 가수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 동영상을 여기저기서 구해서 보게 되었고, 거기에 나오는 일본어는 실생활에서 쓰는 말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인터넷으로 영상을 받기도 했지만 비디오테이프를 우편 거래하기도 했다. 비디오테이프를 싼 소포가 비에 흠뻑 젖는 바람에 테이프의 내용이 모두 지워진 적도 있었다. 아직은 아날로그 시대였다. 나 때는 말이야…….
그렇게 덕질의 문제를 덕질로 풀며 내 일본어는 천천히 자연스럽게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