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2
스트레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와도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다. 가족 중 그나마 가장 가까웠던 사람은 외할머니다. 스트레이의 부모는 스트레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마약 중독자였다. 그래서 스트레이가 태어나자마자 외할머니가 법적인 보호자가 됐고, 데려가서 길러 줬다.
외할머니에게는 자녀가 네 명 있었다. 그 중 스트레이의 어머니를 포함한 세 명이 마약 중독자였기 때문에 외할머니는 그 손주들을 모두 길러 주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집에는 스트레이 외에도 여섯 명이나 되는 아이가 있었다. 스트레이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나중에는 그 동생까지, 스트레이가 그랬듯 아직 젖먹이일 때 맡겨졌다.
외할머니와 함께 지낼 때의 생활을 스트레이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트레이와 다양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떤 생활이었는지 약간은 짐작할 수 있다. 이를테면 스트레이가 노숙을 하면서 화물열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 시끄럽고 추운 화물열차에서 이상하게도 잠을 잘 잤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 사람은 마치 아기 요람처럼 흔들리는 상태에서 잠이 잘 든다고 하니까, 아마 그 때문이지 않았을까? 인간의 본능이래.
- 그래? 그런데 난 아기 때 누군가가 흔들면서 재워준 적이 한 번도 없을 거야. 내가 아기 때 내 요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겠어.
스트레이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아기를 요람에 재우는 일이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어린 시절의 환경을 돌이켜 보면 자신에게는 그 당연한 요람조차 없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흔들면서 재워 준 적이 없다고 단언하는 데에서 스트레이가 어릴 때 살뜰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었다. 집도 가난하고 어른도 하나뿐인데 아이는 많았던 탓일 것이다. 그럼에도 스트레이의 이후 삶보다는 나았던 시기였다. 스트레이는 외할머니가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부모의 역할을 해준 사람이라고 기억한다.
외할머니는 꾸준히 성당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카톨릭 신자였다. 스트레이도 자기 발로 성당에 들어가 본 기억은 없어도, 자신이 아기였을 때 외할머니가 성당에 데려가서 세례를 받게 했다는 사실은 안다. 이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 스트레이에게 잘 된 일이었다. 세례를 통해서 생긴 대부모가 자주 돌봐 줬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와 대부모의 존재 덕분에 스트레이는 한동안 가난하지만 그런대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낸 듯하다. 생일에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파티를 열기도 했다. 대부는 거의 매주 스트레이를 미시간 호수에 데려가서 낚시를 가르쳐 줬다. 만 여섯 살 쯤에는 그곳에서 수영도 배웠다. 미시간 호수는 매우 크기 때문에 마치 바닷가와 같은 모래밭이 여러 군데 있고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러 온다. 스트레이는 그때 배운 수영을 어른이 된 후로도 잊지 않았고 좋아했다. 노숙할 때에도 호수나 바다에서 헤엄을 쳤다.
유치원에 다닐 때는 고양이도 길렀다. 검은색이었고 나이가 많았다. 어린 스트레이는 그 고양이에게 블래키Blacky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어로 생각하면 ‘까망이’ 정도에 해당하는 귀여운 이름이다. 불행히도 블래키는 밖에 나갔다가 차에 치어 죽었다.
외할머니는 스트레이의 일곱 번째 생일이 찾아오기 2주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스트레이와 나를 포함해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누군가가 오래 전 자살한 가족 이야기를 꺼냈고, 그때 스트레이도 자신의 외할머니 이야기를 조금 흘렸다. 가족의 자살은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스트레이는 덧붙였다.
몇 년이 지난 후 스트레이와 그 일에 대해서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심지어 외할머니의 시신을 처음 목격한 사람이 스트레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트레이는 시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까지 간략하게 말해 줬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상황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괜찮았을 리는 없다. 아직까지도 스트레이는 자신의 생일이 다가오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생일이 다가온다는 것은 외할머니의 기일이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라는 연결고리가 없어지면서 대부모와도 연락이 끊어졌고, 아직까지 생사도 모른다. 어린 스트레이는 원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나마도 대부분 잃게 되었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