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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수로 태어났다는 걸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3

by 이정미

외할머니의 자살은 물론 그 자체로 스트레이에게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러나 스트레이가 자기 자신에게 그보다도 더 큰 악영향이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법적 보호자였던 외할머니가 없어져서 부모와 함께 살아야 했다는 사실이었다. 스트레이가 태어난 지 7년 만에 함께 살게 된 부모는 모든 면에서 부모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부모도 외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시카고 남부의 슬럼가에 살고 있었다. 그곳의 당시 사진이 남아 있다면 아마 미국이 아니라 어느 개발도상국처럼 보일 것이라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매우 가난한 동네였다. 건물 중 절반은 불에 탔거나 판자로 덧대어져 있었고 그 중 다수가 마약 소굴이었다. 지금도 위험하고 가난한 동네인 것은 변함이 없지만 최소한 건물들은 많이 정비되었다고 한다.


스트레이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는 동안 어머니와 결혼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드라마 같다고 생각했다. 낭만적이거나 극적이라고 느꼈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 범죄 드라마에서는 가끔 들어봤지만 TV 바깥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실수로 스트레이를 가졌다. 결혼과 임신 중 무엇이 먼저였는지 스트레이는 알지 못한다. 어머니의 임신 기간 동안 아버지는 교도소에 있었고, 자신이 태어나기 직전에야 출소했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스트레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 내 부모는 내가 실수로 태어났다는 걸 한 순간도 잊지 않게 해 줬어.


스트레이의 부모는 대책 없이 살았고 성격도 자기중심적이었다. 스트레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두 사람 모두 스트레이를 외할머니에게 버려두고 그다지 찾아오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아마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스트레이를 데려갔다. 그리고는 방임했다. 여섯 살 터울이어서 아직 아기였던 남동생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그러나 그 후로 아버지 쪽 조부모의 집에 머문 적이 많기 때문에 스트레이보다는 처지가 나았다. 조부모의 집은 좁아서 스트레이까지 같이 지낼 수는 없었다.


부모와 함께 남겨진 스트레이는 부모의 무책임한 생활을 모두 지켜보게 되었다. 아직 어렸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영리했기에 부모가 잘못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이해했다. 부모는 이 작은 목격자를 달갑게 여긴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부모는 집에 없었다. 집에 있을 때에는 마약을 했다. 공과금을 내지 않아서 가스나 수도가 끊기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스트레이가 살던 시카고는 내가 사는 서울보다 조금 더 추운데, 겨울에 난방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스트레이는 그저 옷을 여러 겹 껴입고 버텼다고 한다. 겨울의 찬물 샤워는 최악이라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때로는 부모가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때로는 부모가 모두 마약 때문에 구속되어서, 아동가족복지국Department of Children and Family Services이 여러 번 스트레이와 동생을 데려가서 임시로 보호했다. 스트레이가 여덟 살 때는 경찰이 스트레이의 눈앞에서 총을 뽑아들고 부모를 모두 체포해 간 적도 있었다. 경찰은 현관문을 열라고 소리치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마약을 변기에 흘려버리라고 소리치던 그날의 상황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고 한다. 부모가 양육권을 박탈당하는 상황까지 간 적은 없었던 것이 신기할 정도다.


스트레이는 부모가 자신과 동생의 친부모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출생의 비밀을 의심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자신과 동생은 머리가 좋은 덕분에 어려운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반면, 부모는 지성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는 이야기다. 어려운 삶 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은 스트레이의 강한 의지와 이타적인 성품은 타고난 것일 텐데, 지성과 마찬가지로 부모에게는 없었던 장점인 듯하다. 스트레이를 여러 면에서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낳아 준 것은 아마도 부모가 스트레이에게 해 준 유일하게 좋은 일일 것이다.


물론 부모와 자식이기 때문에 비슷한 부분들도 있다. 나는 부모의 사진을 볼 기회가 있었다. 스트레이의 얼굴은 어머니를, 몸은 아버지를 닮았다. 강철 같은 체력, 민첩한 운동신경도 아마 외모와 함께 부모에게 물려받았을 것이다.


스트레이는 키가 상당히 작고, 거기에 비해 손발은 눈에 띄게 크다. 원래는 키가 더 클 수 있었는데 어릴 때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충분히 자라지 못한 것이 아닌지 나는 가끔 궁금하다. 부모가 모두 작다고 하니 유전의 영향이 가장 크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조부모의 집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란 남동생은 스트레이보다 키가 조금 더 크다.


스트레이와 동생이 모두 건강하고 똑똑하게 태어난 것은 큰 행운, 어쩌면 거의 기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머니가 임신 중에도 계속 마약을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부모로서 어머니보다 나은 점이 없었다. 오히려 더 나빴다.


- 우리 아빠는 내가 살면서 본 중 손에 꼽을 만큼 형편없는 인간이었어.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힘든 경험을 한 후에도 스트레이는 이렇게 평가했다.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가끔씩만 부모와 만나던 아주 어린 시절, 스트레이는 아버지를 좋아했다. 자신이 왜 그랬는지 지금은 모르겠다고 한다. 같이 살게 되면서 아버지는 곧 남보다도 못한 사람이 되었다. 집에 들어올 때면 항상 술이나 약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스트레이를 때렸다. 스트레이는 가만히 맞고만 있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을 벨트 대신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을 때 잘 됐다고 생각했는데, 주먹이 더 피하기 쉬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피하지 못할 경우에는 벨트보다 아프다는 단점이 있었다.


스트레이는 도망 다니기도 했지만 반격하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싸움을 한 상대가 아버지였다. 물론 스트레이는 어린아이였고 아버지는 어른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이가 항상 졌다. 그래도 자신이 맞서 싸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안 된다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아마 스트레이가 피하거나 저항하지 못했다면 아버지는 스트레이가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때렸을지도 모른다. 스트레이는 중학생이 되었을 때쯤 처음으로 아버지를 이기고 기뻐했다. 아버지가 만취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버지는 하룻밤에 맥주를 열다섯 캔씩 마셔댔다고 한다.


자신이 언젠가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내가 물었을 때 스트레이는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 자신은 타인에 대한 연민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고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트레이는 최근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 전에는 어머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거의 없었다. 어머니의 어떤 부분을 싫어하느냐고 물어도 전부 다 싫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함께 살게 된 지금은 종종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들어보지 않았음을 최대한 감안해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될 만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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